돼지와 돼지고기 이야기

『돼지, 돼지고기, 그리고 하트랜드의 돼지들 – 멧돼지에서 베이컨 페스트까지』 2

Meat marketer 2025. 5. 4. 13:45
반응형

 

『돼지, 돼지고기, 그리고 하트랜드의 돼지들 – 멧돼지에서 베이컨 페스트까지』 2

Pigs, Pork, and Heartland Hogs: From Wild Boar to Baconfest

 

제1장: 돼지를 만나다

돼지가 어디서 시작되었고, 오늘날 어떤 위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돼지라는 동물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특성을 지녔고, 어떤 환경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자명해 보이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돼지(pig)'라는 단어의 정의부터 살펴본다. 사람들이 돼지를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용어들과, 이 동물이 생물 분류상 어디에 속하는지도 함께 짚고 넘어간다.


이름 속 의미는 무엇일까?

돼지는 우제류(ungulate), 즉 발굽을 가진 포유류이고, 그중에서도 **짝수발굽동물(artiodactyl)**에 속한다. 이 분류에는 사슴, 낙타, 기린, 양, 소, 염소 등 익숙한 동물들이 포함된다.

그런데 돼지는 이들 짝수발굽동물 가운데 조금 특별한 존재이다. 대부분의 짝수발굽동물은 초식성이지만, 돼지와 그 근연종은 잡식성으로 무엇이든 잘 먹는다.

돼지는 **수과(Suidae)**에 속하는 포유류다. 이 과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멧돼지와 집돼지를 비롯해 **혹멧돼지(warthog), 페커리(peccary), 바비루사(babirusa), 하벨리나(javelina)**와 같은 친척 동물들도 포함된다.
사람들이 돼지를 부를 때 흔히 쓰는 "수이(Soooie)"라는 소리도 이 **수과(Suidae)**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수과 아래에는 **속(genus)인 'Sus'**가 있는데, 이는 돼지의 기원에 대해 논할 때 자주 쓰이는 용어다. 왜냐하면 야생 멧돼지와 가축화된 돼지가 모두 이 속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야생 멧돼지는 Sus scrofa, 가축돼지는 Sus scrofa domesticus로 구분된다.


다양한 돼지 관련 용어들

**Swine(스와인)**이라는 말은 수과에 속한 다리 짧고 잡식성인 포유류 전반을 일컫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가축화된 돼지를 지칭할 때 이 용어가 사용된다.

**Pig(피그)**는 수과에 속한 어떤 동물에도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 용어지만, 보통은 **집돼지(Sus scrofa domesticus)**를 의미하며, 야생 멧돼지와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사용된다. 이 책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보면, **pig는 '어린 돼지'**를 뜻한다. 돼지가 다 자라면 **hog(호그)**라고 불린다. 이 ‘성숙함’이란 기준은 지역과 문헌마다 조금 다르지만, 보통 성적으로 성숙했거나, 체중이 120150파운드(약 5568kg)를 넘었을 때를 말한다.

  • 젖을 떼기 전의 어린 돼지는 piglet(피글릿) 또는 **suckling pig(섭클링 피그)**라 부른다.
  • 암컷 돼지가 첫 새끼를 낳기 전에는 **gilt(길트)**라 부르며,
  • 새끼를 한 번 이상 낳으면 **sow(사우)**라고 부른다.
  • 거세되지 않은 수컷은 boar(보어),
  • 거세된 수컷은 **barrow(배로우)**라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용어가 존재하지만, 돼지를 사육하거나 연구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기본 용어는 이 정도로 정리된다.

 

돼지의 특성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돼지가 어떤 동물인지 이해하는 데 있어, 그들이 필요로 하는 환경과 조건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다시 말해, 돼지의 생리적·행동적 특성은 대부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더위에 약한 동물

야생 멧돼지나 집돼지 모두 땀샘이 없다. 따라서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의 서식지는 대개 시원한 기후이거나, 무더운 지역이라면 그늘, 물, 진흙탕이 풍부한 곳이다.

따라서 더운 날씨에는 대부분 그늘이나 물가, 진흙탕에 머물며 체온을 조절한다. 만약 온도가 **화씨 95도(섭씨 약 35도)**를 넘는데 그늘도, 진흙도, 마실 물도 없다면, 집돼지든 야생이든 빠르게 폐사할 수 있다.

또한 돼지는 햇볕에 매우 쉽게 화상을 입는 동물이다. 고대부터 그늘과 진흙이 이 문제에 대한 자연적 해결책이었다.
현대에는 상업적 사육 농가에서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고기 품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 숲 근처에 모든 농장을 둘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적절한 그늘막이나 쉼터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물과 잠: 돼지의 생존 요소

물은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돼지는 하루 최대 14갤런(약 53리터)의 물을 마신다.
게다가 하루 24시간 중 절반 가까이를 잠으로 보낸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잠자리, 그리고 쉴 수 있는 장소, 등을 긁을 수 있는 장소, 배변할 수 있는 장소—이 세 가지는 야생 돼지가 이상적인 영역을 구성할 때 반드시 포함되는 요소다.

잠에서 깬 돼지는 보통 느릿하게 먹이와 물을 찾는 정도로만 활동한다.
일반 돼지는 하루에 **약 6파운드(2.7kg)**의 사료를 먹고, 수유 중인 암컷은 새끼 한 마리당 약 1.5파운드씩 더 먹으며, **총 24파운드(약 11kg)**에 달하기도 한다.


먹는 데 특화된 신체 구조

돼지는 먹기에 매우 적합한 해부학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강력한 턱 근육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얼굴 근육은 입을 여닫는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잡식성에 맞는 이빨 구조를 가지고 있어, 앞니와 송곳니는 자르고 찢는 용도, 어금니는 씹고 으깨는 용도로 발달해 있다. 실제로 곰의 이빨 구조와 유사하다.


“진짜” 잡식성

일반적으로 잡식성이라고 하면 고기와 식물을 모두 먹는 동물을 의미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일정한 식성의 경계 안에 있다. 하지만 야생 멧돼지와 돼지는 정말로 모든 것을 먹는다.

풀, 뿌리, 견과류, 과일, 땅속 줄기, 뱀, 도마뱀, 지렁이, 개구리, 알, 아픈 동물, 죽은 동물, 심지어 배설물까지 먹는다. 특히 초식동물이 남긴 셀룰로오스 풍부한 배설물을 선호하기도 한다.
해안가에서는 물고기, 조개, 게, 해안에 떠밀려온 해양생물도 먹는다. 심지어 코코넛도 턱 힘으로 부수어 먹는다.


현대 사육 환경의 차이

물론, 이런 극단적인 식단은 야생에 있는 돼지에게나 해당된다.
현대의 돼지는 옥수수, 대두, 비타민, 미네랄정밀하게 조절된 사료를 먹는다. 이것은 고기의 안전성과 맛의 일관성을 위해서이며, 특히 중요한 이유는 돼지고기가 먹은 것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생선으로 키운 돼지를 요리하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날 수 있다.

또한 사료와 환경을 통제하는 방식은 **기생충(회충류)에 의한 감염증인 트리키넬라증(trichinosis)**을 예방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이 질병은 감염된 동물을 먹었을 때 발병하기 때문에, 야생 고기를 통제 없이 먹던 과거에는 흔한 문제였다.

 

모든 가정돼지가 완전히 통제된 식단만을 먹는 것은 아니다. 미식 시장을 겨냥해 전통 품종(헤리티지 브리드)을 키우는 사람들은 대개 일정 수준의 방목과 채집을 장려한다. 특히 가을철, **도토리나 너도밤나무 열매(mast)**가 풍성하게 떨어지는 시기는 돼지를 살찌우기에 전통적으로 좋은 시기다. 도토리와 너도밤 열매는 역사적으로 고급 돼지를 비육하기 위한 사료로 매우 인기가 있었다.

또한 여전히 돼지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니도록 기대하는 문화도 존재한다. 숲에서 채집하거나 인간 거주지 주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청소’하는 역할을 하는 돼지들이 그 예다. 그러나 서구권에서는 음식물 찌꺼기를 돼지에게 먹이는 것이 종종 불법이다. 그 이유는 돼지가 인플루엔자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에 감염되기 쉬우며, 사람에게도 질병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돼지는 여전히 ‘환경 정화자’

통제된 사료 급여 방식이라고 해서 돼지가 청소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인디애나 주에 있는 Belstra Milling Company의 대표이자 여섯 개의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말콤 드크라이거(Malcolm DeKryger)**는 이렇게 말한다.

“돼지는 옥수수를 다양한 형태로 먹을 수 있는 독특한 동물입니다. 밭에서 수확한 그대로의 옥수수는 물론, 제빵이나 에탄올 제조 후 남은 단백질 풍부한 부산물도 잘 먹죠. 이는 돼지를 키우는 우리에게도 좋고, 이런 부산물이 전부 매립지로 가는 대신 돼지 사료가 되니 환경에도 도움이 됩니다.”


거칠거나 밋밋하거나… 둘 다 영양적으로 충분하다

야생의 거친 식단이 아무리 혐오스럽게 들리고, 현대 농장의 사료가 아무리 밋밋해 보일지라도, 두 방식 모두 돼지의 막대한 영양 요구량을 충족시켜 준다.

돼지는 반추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풀이나 녹색 식물에서 영양을 거의 얻지 못한다. 따라서 단백질 섭취는 특히 새끼 돼지나 임신/수유 중인 암컷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임신한 암컷이 질 좋은 단백질과 그에 포함된 질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태아를 재흡수(임신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백질만으로는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따라서 뿌리, 식물, 곡물 사료 등이 보충되어야 한다.


돼지는 사료에 ‘질’만 기대한다

혹시 돼지가 매일 똑같은 사료에 질려하지는 않을까?
드크라이거 대표는 단위위 동물(monogastric) 영양학 석사 학위를 가진 전문가다. 그는 말한다.

“돼지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예요. 매일 같은 품질, 같은 맛, 같은 양의 사료와 깨끗한 물을 충분히 공급받는 것. 그걸로 충분합니다.”


돼지의 강력한 무기: 코

턱과 이빨 다음으로 돼지가 음식을 찾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튼튼하고 유연한 주둥이(코)**다.
이 주둥이를 통해 뿌리, 구근류, 벌레, 지렁이 등을 땅속 깊이에서 파내며 먹을 수 있다.

이처럼 야생 멧돼지나 방목돼지의 채집 활동은 주변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준다.
때로는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해충을 줄여주는 등 이로운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농작물이 심어진 밭에서 이들이 파헤치면 재앙 수준의 피해가 된다. 실제로 야생에서 돼지가 땅을 뒤집은 지역은 인간의 정착지가 형성될 때 나타나는 식생 변화 수준에 버금간다고 한다.


코로 인해 생긴 인류의 오랜 골칫거리

돼지의 파헤치기 본능은 역사적으로 농부나 목장주에게 큰 문제였다.

  • 방목지를 망쳐 다른 가축들이 먹이를 찾지 못하게 만들고
  • 밭과 작물, 심지어 어린 나무까지 뿌리째 뽑고
  • 심지어 울타리마저 들어올릴 정도로 강력한 주둥이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 작물이나 초지를 울타리로 보호하는 대신, 돼지를 가두는 방식이 대중화되었다. 잘 먹여진 상태라면 돼지를 울타리 안에 가두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돼지를 통제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코에 링(ring)을 거는 것이었다. 이 금속 고리는 코를 관통하지 않고 집게처럼 고정하는 방식이다.
링이 있어도 돼지는 낙엽을 뒤적이며 채집 활동은 가능하지만, 강하게 파고드는 행위는 통증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게 된다. 이는 자유 방목하면서도 파괴를 최소화하는 전통적 방식이다.

 

파괴 활동은 사실 돼지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단순히 짚더미 한 무더기낡은 전화번호부 한 권일 수도 있지만, 돼지에게는 무언가를 물어뜯고 부수는 행위가 만족감을 준다. 만약 그런 대상을 주지 않으면, 돼지는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내서 물어뜯는다. 안타깝게도 그 대상은 종종 다른 돼지의 꼬리가 된다.

돼지는 접근 가능한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며, 그것을 해체하려고 시도한다.


미국의 **동물행동학자이자 동물복지 전문가 템플 그랜딘 박사(Dr. Temple Grandin)**는 동물의 심리를 깊이 이해한 인물로,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사육 시스템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 공로로 존경받고 있다. 그녀는 돼지가 매우 복잡한 동물이라고 지적한다.

  • 돼지는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새로운 돼지와는 반드시 싸운다.
  • 애정 어린 행동을 보일 수도 있지만, 공격성이 매우 강한 맹수처럼 싸운다.

그랜딘은 연구를 통해 돼지의 긍정적인 성향은 살리고, 부정적인 성향은 최소화하는 사육법을 제안해 왔다.

그녀는 특히 소규모 그룹보다 대규모 그룹에서 돼지를 사육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큰 무리 속에서는 지배권을 둘러싼 공격성과 싸움이 적기 때문이다.
소수의 돼지를 기를 경우에는 형제자매나 친숙한 돼지들끼리 묶어 키워야 하며, 낯선 개체를 갑자기 투입하면 심각한 공격이 발생할 수 있다.


돼지는 다른 가축이나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회화되어야 하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지배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사람을 낯설게 느끼면 돼지가 사람을 물거나 들이받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돼지는 매우 똑똑하지만, 여전히 본능에 의해 행동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돼지는 "새로움"을 원하지만 "변화"에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돼지는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라서 새로운 것에 끌리지만, 동시에 급작스러운 변화는 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스트레스는 돼지에게 면역력, 신진대사, 내분비계의 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은 고고학자에게는 유용한 단서가 된다. 돼지 이빨을 통해 이 동물이 야생에서 사냥된 것인지, 사람에 의해 길러졌는지를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돼지를 사육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요소다.

  • 스트레스는 공포 반응이나 공격성을 유발하고,
  • 고기의 품질을 떨어뜨리며,
  • 인간을 두려워하는 어미돼지는 새끼를 적게 낳는다.

따라서 스트레스의 원인을 파악하고 줄이는 것이 돼지 사육의 핵심이다. 다행히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 돼지가 사람을 자주 보는 환경에 놓이면 사람을 덜 두려워하게 된다.
  • 무언가를 씹거나 탐색할 수 있는 대상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는 감소한다.

물론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도 있다.

  • 새로운 돼지를 만나거나,
  •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할 때처럼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스스로 발견한 변화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
즉, 스스로 발견한 새로움은 흥미로움으로 작용하지만, 누군가가 갑자기 변화시킨 환경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돼지의 심리와 반응, 행동 방식에 대한 이해는 사육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돼지는 크기, 식욕, 호기심, 뿌리기 습성(rooting) 등으로 인해 언제든지 파괴적인 동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퇘지(boar)는 특히 위험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수퇘지는 야생 멧돼지가 아니라 사육되는 수컷 돼지를 말한다. (물론 야생 멧돼지도 위험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미 멧돼지는 위험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수퇘지를 다룰 때는 상당한 주의와 존중이 필요하다. 수퇘지는 날카로운 엄니를 지니고 있으며, 영역 의식이 강하다. 성체 수퇘지 두 마리를 한 우리에 넣을 경우 반드시 싸우게 되며, 심각한 부상을 동반한 결투로 이어진다.

주변에 암퇘지(어미 돼지, sow)가 있을 경우, 수퇘지는 울타리를 박차고 나가려 하기 때문에 울타리를 훨씬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수퇘지에게 번식은 매우 진지한 일이다. 야생 수퇘지는 짝짓기 철 동안 체중의 20%까지 빠질 정도로 활동량이 급증한다.)


영화나 어린이 책을 보면 **귀엽고 작고 분홍빛의 새끼 돼지(piglet)**들이 사랑스러운 놀이 친구처럼 묘사된다. 실제로 새끼 돼지는 매우 귀엽고, 호기심 많고, 친근하며, 장난기 많은 동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 귀여운 새끼 돼지는 곧 90kg을 훌쩍 넘는 성체 돼지로 성장하며, 성장 중에도 계속 무게가 늘어난다.

게다가, 새끼 돼지는 무척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물기도 한다.
이빨이 너무 날카로워서 보통은 어미의 젖꼭지를 다치게 하거나, 형제끼리 젖을 두고 싸울 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끼의 이빨을 잘라내는(clip) 조치를 취한다.

  • 맨 처음 태어난 새끼는 젖이 가장 많이 나오는 앞쪽 젖꼭지를 차지하며,
  • 모든 새끼는 저마다 선호하는 젖꼭지가 있어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
  •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는, 어미 돼지가 새끼 위로 굴러 덮거나, 심지어 공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어미는 새끼들을 잘 보호하지만, 예외도 존재한다.

**손으로 키운 애완 돼지(pet pig)**가 아닌 이상, 성체 돼지는 어린아이에게 적합하지 않다.

  • 돼지가 많을 경우, 큰 돼지들이 무심코 아이를 밀치거나 밟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 매우 드문 일이지만, 굶주린 돼지가 아이를 공격하거나 잡아먹은 사례도 존재한다.
    (돼지는 작은 동물이나 어린 생물을 먹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 어떤 경우에는 새끼 돼지를 잡아먹는 일도 벌어진다.

돼지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지만, 항상 주의와 존중을 가지고 다뤄야 하는 동물임은 분명하다.

  • 온순한 성격으로 개량된 품종도 있고,
  •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친근해진 개체도 많다.
    하지만 돼지를 만났을 때, 그 돼지가 어떤 품종인지, 어떻게 길러졌는지, 사람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는 경우에는 조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처음 가축화된 돼지는 기후와 서식지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 북유럽의 돼지는 더 컸고,
  • 지중해 인근 돼지는 작고 어두운 색을 띠었으며,
  • 아시아의 돼지는 더 많은 지방을 가지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 돼지가 자연스럽게 진화하도록 방치해왔다. 하지만 1700년대 후반부터 돼지를 좀 더 유용하게 개량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약 200년에 걸쳐 500개 이상의 품종과 계통이 개발되었으며,

  • 고기 품질,
  • 지방량,
  • 성격,
  • 크기 등
    다양한 요구에 맞춰 인위적인 개량과 기록 관리가 본격화되었다.

돼지는 번식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다른 가축보다 개량 속도도 훨씬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앞서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번식 속도만 놓고 보면 오직 토끼만이 돼지를 앞선다.)
이처럼 돼지가 많이 낳는다는 사실은 축복이자 때로는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돼지를 키우다 보면 금세 너무 많은 돼지를 갖게 된다.

암컷 새끼 돼지인 길트(gilt)는 보통 생후 5~6개월이면 성적으로 성숙하며, 임신 기간은 고작 4개월이다. 임신한 암컷은 출산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파로(farrow)'라고 부른다.
한 번에 태어나는 새끼는 평균 10마리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30마리까지 낳을 수 있고, 보통 한 해에 두 번 새끼를 낳는다.

그러니 두 번째 새끼를 낳을 즈음이면, 첫 번째 새끼들이 이미 번식 가능한 나이에 도달해 있다.
결과적으로 불과 몇 년 안에 몇 마리의 돼지가 수백 마리로 불어날 수 있다.


그러나 번식 속도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1만 년이 넘는 가축화 역사에도 불구하고, 돼지는 여전히 야생 멧돼지로 되돌아갈 수 있는 모든 유전 정보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되돌아가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며, 마치 애초에 완전히 가축화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돼지가 기회만 주어지면 쉽게 야생화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실제로 새끼들은 조상처럼 거칠고 뻣뻣한 털을 지닌 외모로 자라며, 성격도 더 사나워진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단순히 어린 돼지에게 먹이를 조금 덜 주는 것만으로도, 품종에 상관없이 돼지는 머리 형태가 달라지고, 머리가 더 길고 곧고 좁아지며, 야생 멧돼지와 더 비슷한 외형으로 자라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은 심지어 농장 안에서 길러져도 나타난다.

결국 돼지는 "잘 먹여주기만 하면 사람 곁에 있는 것을 허락해주는" 정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돼지는 번식률이 높기 때문에 집단으로 살아가는 경향도 강하다.
요즘은 **‘돼지 떼’**를 의미할 때 **‘herd(무리)’**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는 주로 가축으로서의 돼지를 지칭할 때 쓰인다.
야생 멧돼지나 들돼지처럼 야생화된 무리를 지칭할 때는 **‘sounder(사운더)’**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

이 단어는 돼지가 서로 소리를 내며 교류하고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다.
돼지는 다양한 짧은 소리들을 이용해 기쁨, 불안, 위협, 발정, 공격 의도, 새끼 확인, 만족감 등을 표현한다.

  • 놀라면 짧게 짖고,
  • 반가우면 코를 킁킁거리고,
  • 밥이 오면 신나게 소리를 지른다.
  • 이 외에도 특정한 의미를 지닌 다양한 의사소통 소리를 낸다.

요즘 돼지에 관한 글을 보면, 지능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아마도 돼지의 행동이 단순히 잠자고 먹는 생활로 비춰지다 보니, 그저 어리석은 동물로 오해받는 것을 반박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멧돼지를 사냥해 본 사람이라면, 또는 관련 기록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들이 얼마나 교활한지 알고 있다.
사육돼지는 야생 멧돼지에 비해 그 교활함은 덜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지능을 지니고 있다.

  • 간단한 훈련을 통해 재주를 부리거나 특정 작업도 수행할 수 있으며,
  • 특히 음식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매우 영리하게 행동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능이 돼지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는 아니다.
동물의 인지능력(cognition)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연구되기 시작했으며,
무엇이 동물의 ‘지능’을 의미하는지조차 아직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물론 ‘가장 똑똑한 동물’ 순위를 보면,

  • 침팬지, 돌고래, 개(특히 보더콜리), 고래, 고릴라, 코끼리, 까마귀, 앵무새 등
    이 돼지보다 앞서며,
  • 어떤 목록에는 소, 쥐, 문어, 다람쥐도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 대부분의 동물들에 대한 인지 연구가 미비하기 때문에, 공정한 비교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돼지는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그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한 번 무섭거나 싫은 경험을 하면 오랫동안 그 기억을 잊지 않는다.

  • 돼지는 양보다 호기심이 더 많지만,
  • 말보다 훈련에 더 적합하지는 않다.

요컨대, 돼지의 지능은 흥미롭긴 하지만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아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맛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동물인 **Sus scrofa domesticus(집돼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이상이 돼지의 주요한 성향과 특성이다.

  • 이러한 행동이나 욕구는 과거 돼지가 어디서, 어떻게 길러졌는지에 영향을 주었고,
  • 오늘날에도 돼지를 어떻게 사육해야 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이 특징들은 돼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며,
인류와 돼지가 오랜 시간 동안 어떻게 상호작용해 왔는지를 해석하는 데 꼭 필요하다.

이제, 돼지의 길고도 놀라운 역사를 향해 나아가 보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