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돼지고기, 그리고 하트랜드의 돼지들 – 멧돼지에서 베이컨 페스트까지』 제2장
『돼지, 돼지고기, 그리고 하트랜드의 돼지들 – 멧돼지에서 베이컨 페스트까지』 제2장
Pigs, Pork, and Heartland Hogs: From Wild Boar to Baconfest
제2장
초기의 돼지
— 가축화와 초기 문명 —
돼지와 인간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현재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인간과 가장 오래 함께한 동물은 개이고,
그다음이 바로 돼지다.
기원전과 기원후가 바뀌던 시점쯤이면, 구세계 곳곳에서 인간은 이미 1만 년 가까이 돼지와 함께 살아온 경험이 있었다.
초기 수천 년 동안의 핵심 사건은 바로 가축화였으며,
그 뒤로는 인간이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문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돼지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가는 일이 뒤따랐다.
(참고로 인간의 정착생활과 문명의 시작은 식물과 동물의 가축화가 이루어진 지역에서만 가능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몇몇 문화 전통들은
이 가축화 초기의 수세기 동안 형성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아시리아인들은 선지 소시지(블랙 푸딩)**를 만들었고,
바빌로니아인들은 돼지를 이용해 송로버섯을 찾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우선 가축화부터 시작해보자.
가축화: 아주 오래전,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돼지의 가축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상당히 넓은 무대 위에 흐릿한 경계선을 그려야 한다.
정확한 “언제”와 “어디서”라는 답은 존재하지 않고, 새로운 증거가 발굴될 때마다 그 시점은 계속 앞당겨지고 있다.
가축화의 초기 단계가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정의하는 일조차도 불명확하기 때문에,
돼지의 초기 역사를 쓰는 일은 어느 정도 모호함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이 모호함이 오히려 돼지의 역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확실한 사실은 두 가지다.
첫째, 돼지는 정말 오래전에 가축화되었다는 것.
둘째, 오늘날 우리가 돼지라고 부르는 모든 동물은 유라시아 멧돼지(Sus scrofa)의 후손이라는 것.
가축화된 동물들 중에서 늑대만이 멧돼지보다 더 넓은 지리적 분포를 가졌고,
약 1만 2천 년 전에는 멧돼지가 유럽과 아시아 대부분, 그리고 북아프리카 일부에 걸쳐 널리 서식하고 있었다.
늑대와 공통점이 많은 멧돼지는, 그러나 늑대보다 더 적응력이 뛰어나고, 더 기회주의적이며,
먹는 데 있어 훨씬 까다롭지 않은 잡식성이었다.
이런 특성 덕분에 멧돼지는 가축화 이전부터 인간과 복잡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다른 가축 동물들의 조상은 비교적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디에서 가축화가 시작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지만,
멧돼지는 서식지가 워낙 넓었기 때문에 그만큼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가축화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유럽, 중동 등 다양한 지역의 고고학자들이 가축화 초기 흔적을 발견했는데,
특히 많이 출토된 멧돼지 이빨들은 인간이 제공한 음식물을 먹었음을 보여주는 식이 변화의 증거를 지니고 있다.²
멧돼지가 최초로 가축화된 정확한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것처럼,
언제 “진짜” 가축화가 이루어졌는가를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이유는 인간과 Sus scrofa 사이의 상호작용 시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진짜 가축화”라는 개념 자체가 돼지에게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초기 멧돼지들은 사냥꾼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냥한 동물을 전부 다 먹거나 옮기지 못하면, 그 찌꺼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멧돼지들이 배운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정착생활을 시작하자, 멧돼지들은 마을 주변에 머물며 쓰레기나 남은 음식을 먹었다.
사냥보다 수월했고, 인간 곁에 있으면 더 큰 육식동물로부터도 어느 정도 안전했기 때문이다.
이후 사람들은 멧돼지를 의도적으로 먹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공생은 여러 가지 이점을 주었지만, 거친 성격과 날카로운 이빨, 위험한 엄니는 여전히 문제가 되기도 했다.³
일반적으로 가축화란, 인간이 특정 동물을 사육하고 선택적으로 번식시켜, 야생 조상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 동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 정의는 대부분의 동물에 적용되지만, 멧돼지와 돼지의 경우에는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멧돼지들은 인간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스스로 변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짧아지고, 머리가 작아졌으며, 몸통이 둥글어졌다.
감금이나 선택적 교배가 이루어지기도 전부터 이미 멧돼지들은 돼지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야생과 가축의 경계는 오래도록 유동적이었다.
야생 멧돼지는 여전히 마을 근처에서 음식 찌꺼기를 먹었고,
이는 **“관리된 야생동물(managed wildlife)”**로 불렸다.
한편으로는 가축 돼지들이 숲에서 사료를 구하게 하면서, 야생 멧돼지와 교배되는 일도 있었으며,
어떤 돼지들은 다시 야생화되기도 했다.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돼지로서의 형태와 행동이 더욱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이 과도기적 변화를 15년 넘게 연구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스미소니언 협회의 구세계 고고학 담당 수석 과학자 멜린다 지더(Melinda Zeder) 박사다.
지더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멧돼지가 ‘관리된 야생동물’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약 11,700년 전(기원전 약 9700년)이다.
당시에는 아직 빙하와 한랭 기후가 물러나고 있었지만, 중동과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지금보다도 따뜻하고 습한 기후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숲이 우거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자원이 풍부한 지역에 정착하며 작은 공동체를 이루었다.
여전히 사냥을 하긴 했지만, 야생 동물과 '관리된 동물'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약 1만 1,500년 전, 사람들은 어린 멧돼지들을 배에 실어 섬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1만 1,000년 전부터 1만 500년 전 사이, 동물에 대한 통제가 점차 증가하며 가축화로 이어졌다.
기원전 8500년경에는 돼지가 확실히 인간의 통제 하에 있었고,
이 시기에는 염소와 양 또한 가축화되기 시작했다는 증거도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돼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문명 형성기에서 돼지와 사회를 연구한 고고학자 맥스 프라이스 박사는
돼지의 가축화 단계를 분석할 때 고고학자들이 무엇을 살펴보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돼지의 생활 주기를 재구성할 수 있는 단서를 찾는다.
예를 들어, **치아의 법랑질 성장선 결손(LEH)**이라는 흔적은
성장 중인 법랑질이 스트레스로 인해 일시적으로 멈추며 발생하는 현상인데,
우리 안에서 키울 때 LEH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한다.
우리는 기원전 6000년경의 터키 남부 도무즈테페(Domuztepe) 유적지와 같이
돼지를 우리에 가두기 시작한 초기 농경지에서 LEH 발생률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다.
도무즈테페라는 이름 자체가 ‘돼지 언덕’을 뜻하며,
이곳에서 발견된 돼지 치석(이빨의 석회질 찌꺼기) 안에는 전분 입자가 남아 있었다.
즉, 이 돼지들은 익힌 곡물을 먹고 있었고,
이는 중동 지역에서 돼지를 우리에 가두어 키운 가장 초기 증거 중 하나이다.”
돼지는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되었지만,
현재까지의 증거를 종합하면 가장 이른 시기의 가축화는 중동 지역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 터키 지역에 위치한 할란 체미(Hallan Cemi)**라는 마을은
약 1만 1천 년 전에 사람이 거주했던 곳으로, 이곳에서는 농경이 시작되기 전부터
돼지가 이미 가축화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발굴되었다.⁵
이 유적은 1989년에 처음 발견되었고,
이후 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까지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지더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할란 체미 유적에서 2톤의 동물 뼈를 수습했다.
그 뼈들을 15년 넘게 분석하면서 돼지의 연령대 구성, 수컷·암컷 비율,
사냥된 개체인지, 관리되었는지, 가축화되었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
사냥꾼은 대체로 큰 개체를 노리지만, 목축민은 집단 유지를 위해 다른 패턴으로 도축한다.
특히 수퇘지는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암컷 위주로 키우는 경향이 있다.
보통은 생후 6개월 즈음 도축되는데, 이는 그 시점에 매우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규모 가축 무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이런 연구는 명확한 해답보다는 검증해야 할 가설들을 남긴다.”
현재도 많은 고고학자들이 전 세계에서
인간과 멧돼지의 상호작용, 돼지의 가축화 증거를 찾고 있다.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이집트,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그리스, 투르키스탄,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다양한 지역에서
이미 많은 증거가 발굴되었으며,
더 많은 유적이 발굴될수록 새로운 장소들이 계속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⁷
이처럼 돼지의 가축화 과정은 모호하고 유동적이었지만,
기원전 3천년 무렵에는 이미 돼지가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자리잡았고,
이 시기에는 단순한 멧돼지 이빨 이상의 다양한 증거들이 남겨지기 시작했다.
토기에는 돼지 그림이 등장했고,
초기 문헌에는 음식, 농업,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 보다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원전 3486년에는 중국의 한 군주가 돼지를 식용 및 무역용으로 번식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⁸
인구 밀도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 필요했고,
그에 대한 최적의 해답은 돼지였다.
도시와 문명의 탄생
돼지의 가축화가 농경보다 약간 앞섰을 수도 있지만⁹,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그렇게 차이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하려면 가까운 곳에 안정적인 식량 공급원이 있어야 했고,
야생 식물은 작은 마을 정도는 부양할 수 있었지만,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보다 많은 식량과 단백질 공급원이 필요해졌다.
이와 함께 돼지의 수 역시 증가했다.¹⁰
(당시 다른 동물들도 가축화되었지만, 소는 쟁기를 끌 수 있었고, 양은 털을 제공했기 때문에
이들을 식용으로 도축하는 데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조심스러웠다.)
소규모 마을, 유목민, 수렵채집 공동체는 여전히 존재했으며, 지금도 일부 존재하지만,
유라시아 전역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큰 정착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요르단 계곡의 여리고(Jericho)**는 기원전 8000년경에
이미 약 3,000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 성장해 있었다.
이 지역의 유적에서는 기원전 1만 년 이전부터 멧돼지를 도축한 흔적이 나타나며,
도시 내부에서 발견된 작아진 두개골들은
멧돼지가 돼지로 변화했으며,
그 돼지들이 인간과 공동 거주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¹¹
중국에서는 기원전 8000년경에 돼지가 가축화되었다는 증거가 발견된다.¹²
물론 사슴과 같은 야생 동물도 인기가 있었지만,
기원전 6000년경에 이르면
돼지는 단순히 가축화된 정도가 아니라,
점점 정교해지는 농업 사회의 필수 축산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북부는 조(기장), 남부는 벼와 같은 곡물 재배가 이루어졌지만,
돼지는 **양쪽 지역 모두에서 기르게 되었다.**¹³
맥스 프라이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에서는 유럽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돼지를 우리에 가두고 집약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천 년 후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돼지 품종 개량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중국산 품종의 적응력에 주목하며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중국에서 돼지는 점점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고,
모든 육류 소비량을 합친 것보다 돼지고기 소비량이 더 많아지기에 이른다.
중국 문화 속에서 돼지의 중요성은
‘집(家)’이라는 한자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이 한자는 ‘지붕(宀)’ 아래에 ‘돼지(豕)’가 있는 구조로,
**‘집이란 돼지가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돼지 사육 방식을 상징한다.
중국은 마을 중심의 사회였고, 대부분의 돼지는
개인 가정에서 자가 소비 또는 마을 단위의 소비를 위해 키워졌다.
이러한 방식은 시대가 변해도 최근까지 유지되어 왔다.
기원전 4300년경에는 돼지 사육이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서
정부 차원의 관리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한다.¹⁴
물론 이 시기의 ‘정부’는 지방 수준의 권력이었고,
중국이 실제로 통일된 것은 기원전 221년이 되어서다.
하지만 정치적 관심이 돼지에게까지 향했다는 점은
이미 당시에도 돼지가 삶의 핵심 요소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한편 서아시아, 특히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는
단순한 마을 수준을 넘어 복합적인 문화, 정치, 예술, 문자 체계를 갖춘 문명이
처음으로 등장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나일강 삼각주와 지중해부터 페르시아만까지를 아우르며
넓고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지역으로,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온화하고 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농경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작물을 재배할 뿐 아니라,
양, 염소, 소, 돼지 등 4종의 가축을 길러 육류를 얻었다.
돼지 유골 중 일부에서는 야생 멧돼지의 특징도 여전히 관찰되지만,
이 시기 문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는
농경과 가축 사육이 삶의 일상적인 방식으로 정착한 상태였다.¹⁵
수메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 중 메소포타미아에 해당하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 형성된 곳이다.
수메르는 기원전 45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정착되었으며,
세계 최초로 바퀴가 달린 운송 수단과 **문자 체계(설형문자)**를 만든 문명이기도 하다.
(가장 오래된 레시피들도 설형문자로 쓰인 수메르인의 기록이다.)
수메르인들은 대규모 돼지 떼를 사육했지만,
이 돼지들은 대부분 스스로 먹이를 찾아 다니도록 방목되었고,
보리를 먹이로 보충해 주긴 했지만,
이는 돼지들이 인간에게 일정 부분 의존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러한 방목 위주의 사육 방식은
야생 멧돼지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야생과 가축화된 돼지 모두 음식물 쓰레기나 곡물 부산물 등
같은 먹이원을 공유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함께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시기상 조금 뒤처졌지만 훨씬 거대한 문명으로 성장한 곳은
인더스 계곡 문명이었다.
기원전 4000년경에 **레흐만 데리(Rehman Dheri)**와 같은 도시들이 출현했고,
이들이 돼지를 키웠다는 증거는 도자기나 그릇 위에 정교하게 그려진
가축 모티프 속에서 확인된다.¹⁶
본격적인 정착은 수 세기 앞서 시작되었지만,
기원전 2700년경에는 오늘날 파키스탄 지역에
하라파 문명이 뿌리내리며
천 년 동안 번성하는 도시 문명으로 자리 잡는다.
**모헨조다로(Mohenjo Daro)**와 **하라파(Harappa)**라는 두 주요 도시는
각각 4만 명과 5만 명의 인구를 자랑했으며,¹⁷
농업은 정교하고 다양하게 이루어졌고,
주요 곡물과 콩류 외에도 염소, 양, 소 같은 가축이 길러졌다.
그리고 여기서도 돼지는 대단히 인기 있는 축산물이었다.
돼지 뼈, 테라코타로 만든 돼지 조형물, 도자기 그릇에 그려진 돼지 그림은
돼지가 이 지역의 문화와 식단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¹⁸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문명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 문명은 바빌론이었다.
기원전 2000년경, 바빌론은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수도가 되었고,
이 지역은 **바빌로니아(Babylonia)**라 불리게 되었다.
바빌론은 위대한 전사들, 공중정원, 뛰어난 건축으로 유명하지만,
가장 널리 영향을 미친 유산은 함무라비의 법전이었다.
예를 들어 법률 제8조는 돼지를 훔쳤을 때의 처벌을 다루고 있는데,
왕실의 재산을 훔쳤을 때와 일반 시민의 재산을 훔쳤을 때
처벌이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
이는 당시 사회가 계층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즉,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회가 단순 생존이 아닌
계급 구조로 나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식문화도 고급 요리(high cuisine)**와 **서민 요리(low cuisine)**로
나뉘기 시작했다.
상류 계급은 고기 중심 식단, 단 음식, 술, 별미 등
서민이 접하기 어려운 음식을 즐겼고,
궁궐은 귀족보다 더 많은 고급 식재료를 사용할 수 있었다.¹⁹
멜린다 제더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가 중동에서 연구하면서 관찰한 바로는,
어떤 마을이 자급자족적인 구조일수록 돼지의 개체 수가 증가하고,
어떤 지역이 더 복잡한 사회 체계로 편입될수록 돼지의 수는 감소했습니다.
돼지는 토지가 없어도 기를 수 있는 가축이기 때문에,
자급자족형 생활에 아주 적합합니다.
즉, 돼지는 대규모 관리 경제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도시 빈민에게는 이상적인 자원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돼지를 키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선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는 체제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겠다’는 메시지죠.
실제로 고고학적 증거를 보면,
메소포타미아 상류층 지역에서는 돼지의 흔적이 거의 없지만,
빈민층 지역에서는 돼지 유골이 많이 발견됩니다.
돼지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능하게 해줬기 때문에,
부자 계층이 돼지를 경멸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모두가 돼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돼지는 거의 전 세계적으로 가축화되어 받아들여졌지만, 그 과정에서 우려, 편견, 금기 사항도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금기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다양한 집단이 돼지고기 섭취를 꺼리거나 심지어 금지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물론 오랜 시간과 수많은 문화가 관여한 만큼, 모든 집단이 동일한 동기로 이러한 선호 또는 금지를 선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장소와 문화,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이유가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한 가지 이론은 돼지가 생존할 수 있는 기후적 한계와 관련이 있다. 돼지는 시원한 기후나 그에 상응하는 환경—그늘, 물, 진흙탕 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고 쉽게 폐사한다. 그런데 돼지고기 섭취를 금지하거나 싫어하는 지역은 대체로 덥고 건조한 지역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돼지를 건강하게 기를 수 없는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돼지고기를 기피하거나 금지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런 설명은 건조하고 고온인 지역의 사례를 잘 설명해 준다.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편견 역시 금기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요소들은 음식 선호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최근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돼지고기가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으로 여겨졌다는 인식이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문화를 확산시켰다는 이론도 주목받고 있다. 한 집단이 어떤 음식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모습은 주변 집단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몽골에서는 돼지고기를 먹는 행위를 **‘중국인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이는 중국이 역사적으로 적대적 관계였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기피하게 된 문화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반대로 중국에서는 **강한 맛의 고기(소고기, 양고기)**를 즐기는 몽골인을 ‘야만적’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이처럼 상호 편견이 문화적 금기로 이어지는 현상은 다른 지역에서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단순한 신분 차별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돼지를 기르면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지는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긴 정부가 돼지 사육을 제약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기후 문제, 사회적 편견, 이웃 집단과의 문화 차이 같은 이론으로는 **모세 율법(Mosaic Law)**에서 돼지고기를 금지한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유대교에서는 돼지만 금지된 것이 아니라, 바닥을 기는 생물, 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 맹수류 등도 먹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사람에게 질병을 전염시킬 수 있는 다양한 동물들도 함께 금지되어 있다. 이러한 음식 관련 금기와 함께, 모세율법에는 환자를 만진 후 손을 씻는 법, 배설물을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묻는 법 같은 위생 규칙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서는, 이러한 법들을 잘 지키면 이집트인들이 겪은 질병으로부터 이스라엘은 보호받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포괄적이고 놀라운 건강 규칙이 **신의 계시(divine revelation)**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를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탁월한 관찰력에 기반한 규범이라는 해석도 일리가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는 배설물을 방부제처럼 상처에 바르기도 했는데, 이는 파상풍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의 관습을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를 주의 깊게 관찰하여 규칙을 만든 것일 수도 있다.⁽²⁶⁾
사회적·문화적 편견과 종교적 금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질병이 주요한 우려라면, 현대 과학과 위생적 사육 방식 덕분에 상업적으로 길러진 돼지는 안전하다. 또한 오늘날 돼지는 대규모 인구 밀집 지역에서 충분히 떨어진 곳에서 사육되므로, 인플루엔자와 같은 질병이 사람에게 직접 전염될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물론, 야생 동물, 특히 육식 동물을 섭취할 때는 여전히 건강상의 위험이 존재하므로, 사냥 고기를 즐기려는 경우에는 리스크를 인지하고 섭취해야 한다.⁽²⁷⁾
결론적으로, 만약 특정 전통, 신념, 식이 알레르기가 없다면, 오늘날 상업적으로 길러진 돼지고기는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안전한 식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