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유니언 스톡 야드와 20세기 초 붉은 고기 전쟁
배경 이야기: 시카고 유니언 스톡 야드와 20세기 전환기의 붉은 고기 전쟁
19세기 후반, 냉장 기술로 운송된 ‘도축·가공육(dressed beef)’ 산업의 중심지는 시카고의 유니언 스톡 야드였다.
1870년대 냉장 철도 화물차의 완성은 시카고산 육류가 북미 전역으로 유통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후 시카고의 육가공업자들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이르기까지 각지의 도축장과 정육점들과 치열한 가격 전쟁을 벌였다. 지역 사업자들은 ‘신선하고 현지에서 생산된 고기’에 대한 소비자 선호라는 이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결국 시카고 기업들이 대부분의 경쟁자를 이겨냈다. 그 배경에는 서부 목장과의 지리적 근접성, 도시를 중심으로 뻗은 수많은 철도 노선과 그로 인해 가능한 저렴한 운송비, 대규모 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 그리고 극단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영 방식이 있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육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벌어졌으며, 시카고의 유니언 스톡 야드는 그 중심이었다. 이는 미국 육류산업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되는 전환점이었다. 사회학자 에이미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몇몇 도시 지역에 도축이 집중되던 ‘유니언 스톡 야드 시대’는, 동물들을 직접 시장까지 운반하는 대신, 중앙 도축장에서 도축하여 사체를 유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산업을 이끌었다.”
1864년, 아홉 개의 철도회사가 연합하여 ‘유니언 스톡 야드 & 트랜짓 컴퍼니’를 설립하고, 도시 외곽의 320에이커 부지에 중앙화된 가축시장을 조성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이 복합시설은 1865년 12월 25일, 성탄절에 개장되었다. 주요 철도선에서 갈라진 지선이 가축을 실은 열차를 야드로 연결했고, **드로버(Drover)**들이 소, 돼지, 양을 열차에서 내려 우리로 몰았다. 야드의 급수원은 시카고강이었지만, 폐수는 오염된 ‘버블리 크릭(Bubbly Creek)’을 통해 같은 강으로 배출되었다. 1900년경에는 익스체인지와 할스테드 거리 일대 475에이커에 걸쳐, 50마일의 도로와 130마일의 철도선이 야드 내부를 관통했다.
14년 동안(1865~1879) 누적된 통계에 따르면 가축 입고량은 1,016만 5,456두, 그중 1876년부터 1879년까지는 매년 100만두 이상이 유입되었다.
1860년대까지만 해도 쇠고기 도축은 지역 단위였으나, 5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텍사스에서 태어난 소가 시카고에서 도축되어 뉴욕 식탁에 오를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역사가 조너선 스펙트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중앙집중적이며, 대형 육가공업체가 주도하고, 저비용으로 생산되는 현대 쇠고기 생산의 핵심 구조는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이 변화를 주도한 주역은 ‘빅 포(Big Four)’로 불린 육가공회사들이었다:
아머(Armour & Co.), 스위프트(Swift & Co.), 해먼드(Hammond & Co.), 모리스(Morris & Co.).
이들은 “더 크고 더 싼 스테이크”를 보장하며 시장을 지배했다. 이들의 본사와 공장은 모두 유니언 스톡 야드 주변에 위치했다.
냉장 철도차량은 이른바 산업형 쇠고기 시스템의 핵심 기술적 기반이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성공은 단지 기술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기업들은 ‘발굽에서 식탁까지(hoof to table)’ 전 과정을 통제하는 새로운 방식의 기업 운영을 도입했다. 스펙트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또 다른 요소, 이민자 저임금 노동력의 착취에도 기반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서술한다.
“포장공장(packinghouse)은 기술적·조직적으로 정교한 시스템이었지만, 수백만 마리의 도축을 위해선 그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그것은 값싸고 절박한 노동력이었다. 다행히도 기업들은 대량 이민과 노조 억제,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 책임 제한이라는 법적 구조 덕분에 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백 오브 더 야드(Back of the Yards)’**는 빈곤과 과밀, 비행, 환경 오염으로 악명 높았던 슬럼 지역이었다. 업튼 싱클레어의 고전 <더 정글>은 바로 이 지역과 기업에 종사하던 이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노동환경을 묘사했다.
산업형 쇠고기는 “연속 레일”에서 후크에 매달려 처리되는 방식으로 생산되었다. 도축은 망치로 두개골을 내려치거나 척수를 찌르는 일격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공정은 ‘분해 라인(disassembly line)’으로, 숙련도가 낮은 값싼 노동자들의 노동 분업에 의존했다. 이 공정에서 유일하게 숙련이 요구된 부서는 마지막 정육단계였고, 이 작업은 별도의 방에서 도축된 고기를 냉장 전용 4등분 덩어리로 절단하는 일이었다.
스펙트는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고기의 효율적 생산은 노동의 단순화와 분업을 통한 탈숙련화 과정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곧 노동자의 교체 가능성을 높이고, 작업 속도를 기업이 설정함으로써 노동력을 철저히 착취할 수 있게 만들었다.”
20세기 초에는 이미 ‘도축 가공육(dressed beef)’ 소비가 대중화되었다. 육가공업체들은 냉장 차량을 제외한 모든 유통 단계를 직접 통제했으며, 냉장차량 운송을 둘러싼 철도와의 경쟁에서조차 우위를 점해갔다. 과거에는 생축 운송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철도회사가 유통을 주도했으나, 1890년경에는 이 구조가 무너졌다. 수많은 철도회사와 노선이 생기며 경쟁이 치열해졌고, 스위프트, 아머 등의 업체가 자체 냉장차량을 보유하면서 철도회사들은 이전보다 낮은 운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철도(Pennsylvania Railroad)**는 동부의 유통 중심지인 필라델피아 서부에 자체 스톡 야드를 설치하고, 냉장 고기를 소매상에게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유통 구조를 시도하게 된다. (이는 다음 이야기에서 다룬다.)
참고문헌
- Thomas G. Andrews, 〈Making Meat: Efficiency and Exploitation in Progressive Era Chicago〉, OAH Magazine of History, 2010년 1월호, 37–40쪽.
→ 진보시대 시카고의 육가공 산업에서의 효율성과 착취 문제를 다룬 논문으로, 산업화된 육류 생산 시스템의 구조와 그로 인한 노동 착취의 양상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 - Amy J. Fitzgerald, 〈A Social History of the Slaughterhouse: From Inception to Contemporary Implications〉, Human Ecology Review, 제17권 제1호 (2010), 62쪽.
→ 도축장의 사회사적 변천을 다룬 논문으로, 도축 산업이 사회와 인간에게 끼친 구조적 영향을 역사적으로 조명하였다. - Chicago Historical Society, 〈The Birth of the Chicago Union Stockyards〉, 2001.
- 출처: Chicago Historical Society 웹사이트
- 참고일: 2020년 9월 1일
- 보조 자료: 〈Union Stockyard〉, Encyclopedia of Chicago; 〈The Union Stock-Yards at Chicago〉, Hearth and Home, 1870년 4월 16일자; 〈The Chicago Stock-yards〉, American Artisan, 1871년 5월 24일자.
→ 유니언 스톡 야드의 탄생과 구조, 당대의 평가에 대한 1차 사료 및 온라인 백과사전 내용 포함.
- 〈Total Receipts at the Union Stock-Yards for Fourteen Years〉, The Hub (New York), 1880년 12월 1일자.
→ 1865년부터 1879년까지 14년간 유니언 스톡 야드를 통해 입고된 가축 수를 집계한 기사로, 소 외에 돼지와 양의 입고량도 수백만 마리에 달함을 보여준다. - Jonathan Specht, Red Meat Republic: A Hoof-to-Table History of How Beef Changed America, 프린스턴대학교출판부, 2020, 1–2쪽.
→ 미국 쇠고기 산업의 역사적 전개를 “발굽에서 식탁까지(hoof-to-table)”라는 개념으로 풀어낸 종합 저서. 쇠고기의 산업화가 미국의 식생활과 유통 시스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룬다. - Ibid., 180쪽.
→ 같은 저서에서 이민자 저임금 노동력 착취와 법제도의 한계가 도축업의 기반이 되었음을 설명한 부분. - Fitzgerald, 위의 논문, 60쪽.
→ 도축업에서의 노동조건과 환경 오염 문제, 특히 ‘Back of the Yards’ 지역의 슬럼화에 대한 설명이 포함된 부분. - Specht, 같은 책, 181–183쪽.
→ 포장공장의 분업 시스템, 노동의 탈숙련화, 속도 통제 등으로 노동력을 극한까지 활용한 산업 구조를 설명한 핵심 부분.
West Philadelphia Collaborative History - Backstory: Chicago’s Union Stock Yards and Turn of the Century Red Meat Wars
collaborativehistory.gse.upenn.edu
"슈킬 강변의 사랑스러운 도축장: 철도와 도축장 회사 이야기"
Lovely Abattoir on the Schuylkill: The Railroad and the Stock-Yard Company
펜실베이니아 철도는 슈킬 강 서쪽 강둑에 21에이커 규모의 중앙 도축장 단지를 건설하였으며, 이 시설은 1877년경부터 1925년까지 운영되었다.
이 도축장은 시카고의 475에이커 규모 유니언 스톡야드를 본뜬 필라델피아의 버전으로, 남북전쟁 이후 미국 육가공 산업이 경쟁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의 상징적인 시설이었다. 웨스트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이 도축장은 대규모의 소, 돼지, 양을 한 곳에 집결시켜 기계화된 방식으로 도축하고, 이를 동부 해안 시장에 유통하기 위해 손질하여 판매하는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필라델피아 도축장을 운영하게 될 ‘Philadelphia Stock-Yard Company’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72년 봄에 나타난다. 당시 시 당국은 이 회사가 소를 임시로 보관하기 위한 목재 축사의 설치를 허가하였으며, 이는 펜실베이니아 철도 소유의 슈킬강 북쪽, 마켓 스트리트 상단 지역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철도회사는 1874년 가을에 도축장 설립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이에 대해 일부 개인 및 단체로부터 반대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들은 특히 강 오염 문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였다.
예를 들어, ‘B.S.’라는 이니셜을 가진 시민은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명하였다. 도축장에서 발생하는 피, 내장, 뼈, 지방, 생가죽, 동물의 액체 및 고형 분변 등은 모두 세척이 필요하며, 그로 인한 배수는 슈킬강으로 흘러들게 될 것이고, 그 찌꺼기들은 강 바닥의 진흙과 섞여 끔찍하고도 영구적인 오염 덩어리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보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반대는 필라델피아의 유력 인사 16명이 서명한 '펜실베이니아 철도에 보내는 시민 위원회의 서한'에서 나타났다. 이들은 기존의 분산된 도축 시스템보다는 중앙집중형 시설이 더 효율적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뉴저지에 존재하던 PRR 소유 도축장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필라델피아에서도 반복될 것이라며 우려하였다. 특히 동물 우리에서 발생하는 악취 문제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였다.
필라델피아 도축장은 1877년에 본격 운영을 시작하였으며, 1885년 기준으로 이곳은 소 7,300두를 수용할 수 있는 축사, 양 10,000마리 규모의 우리, 유사 규모의 돼지 축사, 송아지 및 젖소용 지붕 있는 쉼터 500칸, 사무실 및 경매소, 말 거래를 위한 마구간, 도축장, 지방 가공 및 축소 부서 등을 갖추고 있었다.
이 도축장을 설계한 윌슨 브라더스 앤 컴퍼니는 1885년 자사 카탈로그에서 악취나 오폐수 처리와 관련한 환경 문제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도축은 주 건물 1층에서 진행되며, 바닥은 두꺼운 소나무 판재로 마감되어 있고 틈새는 밀봉 처리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가축은 건물 끝단의 문을 통해 중간 통로로 입장한 후, 울타리로 구분된 도살 구역으로 이동하며, 각 구역에는 도축 장비와 고기 걸이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도살 후 발생하는 혈액과 찌꺼기는 별도로 수거되어 활용 부서로 이송되며, 온수 및 냉수가 충분히 공급되고 건물 전체는 증기로 난방된다. 이 도축장은 하루 최대 1,200두를 도축 및 손질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해당 카탈로그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운영되는 도축장이지만, 그 운영은 불쾌감을 주지 않으며, 동물의 모든 부위가 활용되고 어떤 폐기물도 강으로 방류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염된 세척수의 구체적인 처리 방식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그 배출 지점이 여전히 슈킬강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이와 유사한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도 제기되었다. 피츠버그 이스트 리버티 스톡야드에 관한 역사에서 데이비드 로텐스타인은 1875년 한 주민 R.S. 로버트슨이 법정에서 도축장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인해 집의 창문을 닫고 집안 곳곳에 장뇌를 피워야 했다고 진술한 사례를 인용하였다.
필라델피아 도축장과 가장 가까운 주거 지역은 파웰턴으로, 남쪽 경계가 도축장에서 약 0.8km 떨어진 곳이었다. 해당 지역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펜실베이니아 철도 임직원들이 다수 거주하던 곳이었다. 예컨대 철도 사장 윌리엄 하젤 윌슨은 1867년부터 1902년까지 파웰턴 애비뉴 3501번지에 거주하였으며, 제2부사장 찰스 에드먼드 퓨는 인근 베어링 스트리트에 거주하였다. 이외에도 도축장 설계자 존 윌슨, 기관사 존 맥닐, 차장 윌리엄 헤이스, 차량 공장장 아이작 반 하우튼 등이 해당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도축장 운영 기간 동안 파웰턴에 악취 피해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확정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도축장 옆에 표기된 '호텔'에 대해서는 초기 설계도 및 보험지도에서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블로거 마크 도미너스는 이 ‘호텔’이 인간이 아닌 가축을 위한 일시적 보관소임을 설명하였다. 이는 도축 직전 가축이 대기하는 공간을 의미하는 업계 용어였다.
필라델피아 도축장은 약 50년간 운영되었으며, 1920년대 초부터 PRR은 30번가 역 신축을 염두에 두고 기존 부지를 정리하였다. 1928년부터 1933년까지 건설된 이 역은 오늘날 암트랙이 사용하는 주요 철도 허브이며, 동부 해안과 펜실베이니아 간의 주요 교통망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기존 도축장은 1931년에 그레이스 페리 애비뉴와 36번가 일대로 이전되어 최신식 시설로 재개장되었으며, 이 부지는 이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펜노베이션 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 David Rotenstein, 「슈킬강의 도축장들(Slaughterhouses on the Schuylkill)」, 2015년 9월 22일자 블로그 포스트에서 발췌. 2020년 9월 5일 접속. (https://blog.historian4hire.net/2015/09/22/slaughterhouses-on-the-schuyl...)
- 「필라델피아 시 정부(Philadelphia City Government)」, Philadelphia Inquirer, 1872년 4월 12일자.
- 「특별 공지사항(Special Notices)」, Philadelphia Inquirer, 1874년 10월 8일자.
- 「도축장들(Abattoirs)」, Philadelphia Inquirer, 1874년 11월 25일자.
- Wilson Bros. and Co., 『시공 사례집(Catalogue of Works Executed)』, 필라델피아: J.B. Lippincott, 1885, 55–56쪽. 해당 내용은 Rotenstein의 블로그 「슈킬강의 도축장들」에도 게시됨.
- 위의 자료에 동일.
- David S. Rotenstein, 「국가의 모델: 이스트 리버티 도축장에서의 판매, 도축 및 가공(Model for the Nation: Sale, Slaughter, and Processing at the East Liberty Stock Yards)」, Western Pennsylvania History, 2010–11년 겨울호, 37쪽.
- 더글라스 유뱅크(Douglas Ewbank)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사회학과 명예 연구교수이자 인구학자가 2020년 8월 작성자에게 제공한 분석 자료.
- Mark Dominus, 「필라델피아 도축장 '호텔' – 담론의 세계(Philadelphia Slaughterhouse Hotel—Universe of Discourse)」, 2019년 7월 2일자. 2020년 9월 5일 접속. (https://blog.plover.com/history/slaughterhouse-hotel.html)
- Philadelphia Public Ledger, 1931년 6월 29일자 기사 스크랩. Rotenstein의 「슈킬강의 도축장들」 블로그에 게시됨.
West Philadelphia Collaborative History - Lovely Abattoir on the Schuylkill: The Railroad and the Stock-Yard Company
collaborativehistory.gse.upenn.edu
'축산과 식육산업의 역사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바비큐의 진화 (2) | 2025.05.08 |
---|---|
유니언 스톡야드에서의 하루 (1) | 2025.05.05 |
유니언 스톡야드(Union Stock Yards)의 역사 (0) | 2025.05.05 |
인도 베다 시대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었는가? (1) | 2025.05.03 |
인도 베다 시대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었는가? (0) | 2025.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