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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과 식육산업의 역사 인문학

이탈리아 요리의 역사

by Meat marketer 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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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알베르토 카파티(Alberto Capatti)의 저서 "Storia della cucina italiana"(이탈리아 요리의 역사) 표지입니다. 이 책은 이탈리아 음식문화와 요리의 변천사를 다루는 대표적 저작으로, 이탈리아 현대 음식사 연구의 권위자인 카파티가 집필했습니다.


책 정보 및 내용 개요

  • 저자: Alberto Capatti
  • 출판사: Guido Tommasi Editore
  • 출간: 2018년
  • 분량: 384쪽
  • ISBN: 9788867530540

주요 내용

  • 이탈리아 요리의 역사적 흐름
    이 책은 이탈리아의 식문화가 경제·정치·사회 변화와 어떻게 맞물려 발전해왔는지를 다룹니다.
    전후 식량난, 1960년대 경제 성장기, 현대 미디어와 디지털 시대까지
    다양한 시대상을 음식과 식탁의 변화로 풀어냅니다25.
  • 요리와 사회의 상호작용
    단순한 요리법이나 레시피 소개를 넘어,
    음식이 이탈리아인의 정체성, 사회구조, 문화적 상징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 분석합니다.
  • 방대한 자료와 에피소드
    저자의 개인적 경험, 다양한 요리책, 신문, 영화, TV, 블로그 등
    폭넓은 자료와 일화가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5.
  • 특징
    • 1944년(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15년까지 현대 이탈리아 식탁의 변천사에 집중
    • 때로는 인류학적, 때로는 출판·미디어사적 관점에서
      이탈리아 음식문화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
    • 잊혀진 요리, 유명 인물과 음식, 대중문화 속 음식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분석이 어우러짐

독자 대상

  • 이탈리아 음식문화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
  • 음식사·식문화 연구자,
  • 이탈리아 현대사와 사회변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됩니다25.

평론 및 의의

  • 이 책은 이탈리아 음식의 변천사와 사회적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며,
    음식이 단순한 생존 수단을 넘어
    국민 정체성, 문화, 사회 변화의 거울임을 보여줍니다.
  • 방대한 정보량과 꼼꼼한 자료조사,
    그리고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어우러져
    이탈리아 요리의 본질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5.

요약:
"Storia della cucina italiana"는
이탈리아 음식과 식문화의 역사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폭넓게 조명한
대표적인 현대 이탈리아 음식사 저작입니다.


프롤로그 번역 

이 이야기는 내 삶의 시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세월을 아우르며, 이탈리아의 요리와 식생활을 다룬다. 나는 이 이야기를, 대학(미식학과)에서 은퇴한 후, 내 기억을 모으고 여러 요리책을 다시 살펴보면서 쓰기 시작했다. 정치나 경제적 사건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물질적 삶, 곧 ‘먹는 것’을 설명하는 교과서에 실릴 법한 방식으로 자료를 배열해보고자 했다. 내가 모은 책들은 내 서재에 있던 것들이고, 여기에 점차 흩어진 인용문과 참고자료가 더해졌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이 자료들은 점점 더 중요해졌는데, 내가 과거에 직접 읽고 탐독했던 것들이었고, 기억이 문서보다 앞서 나가며 때로는 이를 증언으로 바꾸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전쟁이 끝난 시기부터 경제 호황기까지, 이탈리아인의 기억 속에서 이어진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는 교과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1968년 이후에는 나의 이야기, 곧 내가 직접 살아낸 문화의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과거, 즉 전쟁처럼 아득한 시기를 생각하며 이 작업을 시작했고, 이어서 현재를 생각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개념적 차원,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척도를 발견했다. 1993년 이후, 내가 읽는 방식과 글쓰기가 점점 더 직접적인 삶에 노출되면서, 이 발견은 내 작업 방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그 결과, 나는 점점 더 가까운 미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코 불가능하지 않은 사건, 즉 2015년 엑스포로 결론을 맺는다는 다소 엉뚱한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제와 연대기적 순서를 택한 것은, 문학적 작업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내가 ‘La Gola’라는 월간지를 안토니오 포르타와 함께 이끌던 시절이나, ‘Slow’ 잡지를 운영하던 때, 혹은 미식학과 대학의 총장직을 맡았던 시절(피에몬테의 동료 총장들, 그리고 까를로 페트리니의 눈초리 아래에서 감시받던 그 시절)을 회고하며, 세세한 추억에 빠지거나 내 자신을 좇는 쪽으로 이야기를 흘려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방법론적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주제와 장의 뼈대를 유지하면서, 오늘날의 식생활과 요리가 그 주체들에 의해 어떻게 조작되고, 권력의 장이자 이념적 갈등, 혹은 평온한 출판·학계 경력의 무대가 되는지를 재발견하는 현재의 역사를 그리고자 했다. 수많은 소책자의 경쾌한 주제이거나, 무겁고 반복적인 정립의 대상이었던 요리는, 내게는 전후와 재건의 시기 이탈리아인들에게 비쳤던 것보다 훨씬 더 문제적인 대상으로 다가왔다.

다음 단계는, 오늘날의 감수성과 문화에 다가가기 위해, 과거의 글쓰기를 넘어 웹이라는 미지의 정글에 들어서는 일이었다. 거기서 ‘나’는 블로그가 되고, 역사는 포털이 된다. 이 과정을 암시한 뒤, 나는 물러나기로 했고, 그 계기는 2015년 엑스포였다. 우리가 그에 대해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2008년부터 이어진 그 오랜 기다림에 대해 추측해볼 여지는 많다. 이쯤에서, 나는 뒤를 돌아본다. 폴렌초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고, 1980년대 밀라노의 기억은 내 안에 또렷이 남아 있지만, 나를 압도하고 언젠가 우리를 휩쓸 것 같은 거대한 물결을 바라본다. 그 물결은 환경·기후 정책 전문가, 지역과 그 고유하고 연약한 자원을 지키려는 이들, 농촌으로의 회귀와 전통의 재발견, 낭비와 생명공학의 배제를 외치는 이들에 의해 예고된다. 나는 그 물결을 흘려보내고, 믿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롯이 내게 있다. 1950년대, 나는 가족과 함께 재건의 시기를 겪었고, 프랑스에서 요리를 공부하며 유럽 농식품의 선진국인 그 나라로부터 미식의 ‘조용한 힘’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 다가오는 커뮤니케이션의 미래 속에서, 나는 오직 한 가지 자원, 즉 비판의 무기를, 겉보기에 하찮고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요리’라는 분야에서 활용해보고자 한다.

 

음식의 역사는, 냄비에 오르기 전에 먼저 생각 속에서 조리되는 음식들의 역사이며, 이들은 이 책 전체를 통해 말, 글, 사진, 텔레비전, 웹 등 가장 다양한 언어로 등장한다. 나는 이 음식들을 이탈리아 무대에서 표현되고 제안된 그대로, 즉 실제적이면서도 상상력이 더해진 본질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음식은 가족과 시민사회, 소통과 도덕 등 모든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이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기능에 맞는 상상적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들 중에서도 시간적 가치, 곧 과거와 현재는 특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날짜와 달력, 시대와 구분, 연대기적 순서를 채택하여, 실제든 허구든 모든 변수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했다.
이것은 결국, 어떤 관점과 이념에 따라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물러나기도 하는 ‘현재’의 역사이다. 나에게는, 매일매일 다시금 요리를 되새기게 만드는 그런 현재의 이야기이다.

 

1973년 키푸르 전쟁과 오일 쇼크는 이탈리아의 에너지 소비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1973년 12월부터 시작된 ‘오스테리티’(긴축)는, 일요일 자동차 운행 금지뿐 아니라 난방 시설, 공연 시간, 화물 운송 등에도 제한을 가했다. 그 결과, 생산이 감소하고 실업자가 증가했다. ‘오스테리티’라는 용어는 이러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채택되었으며, 이는 환경에 대한 감수성과 새로운 소비 모델을 자극했고, 식품 가격과 유통에도 영향을 미쳤다12458910.

이 시기, 미식 관련 언론은 경제 상황을 가까이서 따라가며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1974년에는 『Cucina in austerity』(긴축의 요리)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과연 토요일에는 안심 스테이크, 일요일에는 대하를 먹는 등 중산층의 과잉을 줄이고, 장을 볼 때 가격에 더 신경 쓰도록 하는 책이 필요했을까? 그 책은 1960년대 소비문화를 대표하던 요리사 루이지 카르나치나와 식품 분야의 체계에 주목하던 언론인 빈첸초 부오나시시, 그리고 매일 장을 보고 요리하고 상을 차리는 주부 리아 칸토니가 함께 썼다. 이들의 의도는 단순한 절약을 넘어선 것이었다.

긴축의 요리는 세 가지 원칙에 의해 운영됐다. 첫째, 재료를 가격에 따라 선택할 것. 둘째, 계절성의 회복. 셋째, 남은 음식의 재활용이다. 첫 번째 원칙에서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보다는 실질적인 조언이 주어졌다. 380개 요리 중 79개가 고기를 포함했으나, 그 중 상당수는 소시지, 소시지, 내장, 저급 부위, 말고기 등 저렴한 재료를 사용해 절약을 실천했다. 파스타는 75개 레시피로 메뉴를 지배하며, 경기 침체기에는 파스타가 방어선이 됨을 보여준다. 운송 및 보관 비용이 오르면서 계절성은 가격 안정과 부가가치의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1월에는 난방과 칼로리가 더 필요하므로 파스타와 콩, 양배추 소스, 근대나 소금에 절인 멸치 소스, 참치(통조림) 미트로프, 돼지껍데기·꼬리·족발 등 저렴한 돼지고기 부위가 추천됐다. 계절성은 자연적이면서도 문화적이다. 과일의 풍요로움도 한 측면이지만, 여름(8월)에는 지방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계절성의 일부다. 연중 주기는 지역·지방의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저자들은 지역색을 강조하기보다 대도시의 대중을 겨냥해 메뉴를 구성했다.

오스테리티는 환경과 신체, 시장과 저장, ‘마른 시기’와 채식 요리로의 회귀를 의미했다. 카르나치나는 채식 메뉴 12개를 준비했다. 고기와 채소의 대립은 이론적으로만 채소에 유리하게 풀렸는데, 실제로는 고기 요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오나시시의 푸글리아 출신 배경과, 카르나치나의 모든 식단에 열린 호텔업 문화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여기에, 오일쇼크가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었던 만큼, 베로넬리가 『잃어버린 음식 찾기』에서 이미 시도한 ‘별자리별 식단’도 도입됐다. 예를 들어, 전갈자리에는 과일, 채소, 곡물 가공식품이 추천되고, 황소자리에는 천천히 여유롭게 먹으라는 조언이 붙었다. 다소 황당하지만, 오로지 별자리만이 오일 배급의 끝을 맞힐 수 있었던 시기였다.

운송비와 칼로리 가치가 음식 가격에 영향을 미치면서, 간접적인 변화도 나타났다. 도로에서는 ‘트럭 기사들이 들르는 식당’이 더 이상 인기 있는 장소가 아니게 됐다. 천 리라도 넘지 않는 가격이었지만, 와인은 형편없고 음식은 무겁고 서비스는 서둘렀다. 오토그릴(고속도로 휴게소)도 더 이상 미래지향적 매력을 잃어갔다. 당시에는 음주운전 제한이나 파스타로 인한 졸음을 예방하는 조언도 없었다. 트럭 운전사는 더 이상 모범이 아니었다.

 
 

미식가는 미각을 뽐내지만  
트럭 운전사는  
직업이 가르쳐준 대로  
식탁에 앉으면 배를 채운다.

 

경제 호황이 ‘이동하는 음식’과 ‘여행하며 먹기’를 장려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규정과 금지, 추천 식당과 고속도로 사이의 경계가 생기며 한 주기가 끝나고 다음이 시작됐다. 고속도로 출구 근처의 시골 오스테리아도 다시 숨통이 트이게 됐다

 

오스테리티(긴축)가 요리책에서 가볍고 넓게 다루어진 것은, 전쟁 시기가 아닌 평시에 식단을 줄이거나 식재료를 대체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테리티가 식습관을 좌우하는 사고방식에 미친 영향은 매우 중요하다. 오일 쇼크는 식문화 변화의 방아쇠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요인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구조로 자리 잡았다. 첫 번째는 음식에 대한 집단적 기억과, 그 기억이 음식 선택과 각자가 부여하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다. 두 번째는 소비 방식과, 생산과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성이다.

사람들은 늘 과거의 좋은 시절을 이야기해왔지만, 냉장고와 자동차 구입이 더 이상 당장의 목표가 아니게 되자, 어떻게 냉장고를 채우고 자동차로 어디를 갈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기술이 완전히 정착되면, 그 기술을 점점 더 많이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전의 삶과, 그 과정에서 잊힌 지식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상상하며,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고전적’ 도구들을 다시 쓰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일 쇼크는 자전거와 산책을 재발견하게 했고, 평일에도 자동차가 줄지는 않았지만, 슈퍼마켓에서 가격·계절·식단을 고려해 다른 제품을 고르게 만들었다. 결국, 이런 가치야말로 한때 요리의 본질이 아니었던가?

1968년 이후, 집단적 기억은 다시 깨어났다. 누군가에게는 과거가 질서 있고 평온했던 시절의 증거가 되었고, 다른 이들은 그런 회상을 파시스트적이라 비판하며, 대중주택·포장도로·공장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시골 역시 도피처가 될 수 있었다. 기억은 전쟁에서 산업화의 호황기까지의 가까운 과거와, 가족·어린 시절·욕구와 욕망의 각성 등 개인의 삶 전체를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가까운 과거는 점차 비판적으로 재해석되고, 요리 분야에서는 덜 풍성하고 더 단순한 음식을 찾는 경향이 생겼다. 오스테리티의 영향으로 ‘옛날 음식’이 재평가되었고, Buonassisi & C.의 책에서는 브로콜리 파스타, 농부식 파스타(양배추와 감자), 미네스트로네(파스타와 채소) 등 잊혀가던 요리들이 다시 등장했다. 전통이 다시 소환되고, 농부의 이미지는 음식에 색을 더했다. 개인적 음식 기억의 자극은 20년 뒤, 하녀·할머니·이모가 쓴 듯한 복사본 레시피 노트가 쏟아져 나오는 현상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1973년 이후 집단적 기억의 큰 흐름 속에서 연구되어야 할 복합적 현상이다.

오스테리티의 해는, 에너지 고갈의 예고와 상징적 종말과 함께, 이런 비판적 현재의 다양한 모습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요리책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2년 뒤 나온 『Eva in cucina』는 조르조 미스트레타의 자문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네 가지 치즈 탈리아텔레, 햄과 트러플 스파게티, 비스마르크식 안심, 투르네도 로시니 등, 1960년대의 최악의 조합, 호텔식 요리의 진부함, 삼색 퓌레와 샹티이 크림 같은 키치적 요소가 여전했다. 오스테리티의 요리는 묻혀버리고, 이제는 복사본이 인용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의 창조 행위가 되는 원리로 다시 레시피가 조합된다.

이제는 몇 가지 피할 수 없는, 오래 지속될 구조가 요리 모델에 영향을 미친다. 바로 ‘가난한 요리’의 존재와, 산업사회 소비에 반대하는 건강한 식단의 필요성이다. 두 경우 모두, 경제 모델의 변화가 요리 모델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가난한 요리’라는 개념은 1970년 위게트 쿠피냐르에 의해 발전되었고, 1974년 엘레나 스파뇰에 의해 『가난한 나라의 요리』로 번역되었다. 이탈리아어판 표지에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음식,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 오두막과 농가에서 전해진 레시피”라는 부제가 붙었다. 시간적으로는 원초적 요리였고, 공간적으로는 자연과 인간 노동의 가장 단순한 형태에 빚진 음식이었다. 제3세계의 수많은 요리 중, 편집자의 손을 거쳐 독자에게 익숙한 요리(폴렌타, 양념빵(브루스케타, 판차넬라, 피자), 채소수프, 파리나타 등)도 다시 등장했다. 가난을 옹호하면서, 생존과 임기응변의 기술을 아우르는 레시피들이 기름과 공장 소스 없이, 단순하고 때로는 대충 만든 조리법으로, 맛있고 새로운 풍미를 제시했다. 제3세계의 엄격한 경제는 오히려 즐거운 자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최근까지 제3세계 요리를 경험했고, 그 흔적을 잊힌 관습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Buonassisi & C.와 달리,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오스테리티의 요리가 아니었을까?

 

건강한 식사의 모순 ― 1970년대 이탈리아의 식생활 풍경

‘잘 먹고 잘 살기(Mangiar bene e stare bene)’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두 번째 절제의 원칙은 곧 ‘건강하게 먹기(Mangiar sano)’였다. 이 개념은 무수한 변형을 거치며 반복적으로 제시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임의로 해석되고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안에는 이미 식이학적 논쟁의 씨앗이 숨어 있었다.

석유 파동이 일어났을 당시, 조리법은 그러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명확한 가이드를 제시하지 못했다. 1971년 당시 ‘건강하게 먹는다’는 것은 예를 들면, 버터는 “날것 그대로거나 낮은 온도에서 가열해서 섭취하고, 절대 볶지 말아야 소화가 잘 된다”는 식의 조언을 의미했다. 그러나 기름, 특히 올리브유는 “가장 식이적으로 권장되는 지방”으로, 찬 상태든 뜨겁든, 심지어 끓는 상태에서도 괜찮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설명이 명확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예컨대, “식품 산업 광고가 우리에게 주입한 여러 믿음들과 달리, 살찌는 측면에서는 올리브유, 버터, 마가린, 라드(돼지기름) 등 모든 지방은 아무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방이 이처럼 논쟁의 여지가 있는 요소라면, 어떤 고기를 선택하고 어떻게 조리해야 할까? ‘그릴에 구운 고기’는 일반적으로 가장 소화가 잘 되고, 영양소 손실이 적은 방식으로 간주되었지만, 겉이 탄 채로 접시에 올라오거나 검게 그을린 줄무늬가 있다면, 오히려 단순히 버터에 구운 스테이크보다 더 소화가 어렵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야 할까? 밀라노의 한 전문 클리닉에서 활동하며, 라팔로의 대형 호텔에서 식이치료 부서를 운영하던 식이요법 전문의 렌초 루케시(Renzo Lucchesi)는 “단순히 버터로 조리한 후 고기 표면의 기름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미식학적으로 보면 그릴이나 토마토 소스 볶음조차 못 미치는, 별로 매력 없는 조리법이었다.

결국 의학적 식이학은 요리 실천과 소비 행태를 사후적으로 인정하고, 그것들을 조정하여 새로운 권장사항을 제시하지만, 이 권장사항들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건강하게 먹기'는 하나의 목표가 되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절충의 결과였고, 절대적인 기준 없이 실천과 이론, 습관과 그에 따른 결과 사이에서 추측에 의존한 감축적 시도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이 개념은 쾌락적인 관점에서 실현 가능한지 여부조차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탄생한 ‘없는 식단’은, 곧 무엇인가를 제외하거나 덜어낸 식생활이었고, 각 개인의 상황과 조리법에 따라 달라져야 했다. 그 핵심은 ‘건강’과 ‘경제성’이라는 원칙이었지만, 그것은 장기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1973년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사실상 20세기 초 펠레그리노 아르투시(Pellegrino Artusi)가 『요리 속의 과학(La scienza in cucina)』에서 부르주아 계층을 대상으로 주장했던 것과 유사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 개념이 1970년대에 다시 부활했을 때, 대상은 이전보다 훨씬 광범위해졌고, 경제적 풍요를 어느 정도 달성한 대중이었으며, 그로 인해 새로운 모순이 생겨났다. 실제와 이상이 혼재한 목표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각 사례마다 달리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필요는 오늘날에는 미미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고, 오늘날의 욕망은 지나치게 과잉되어 보인다. 이는 단순한 ‘필요’가 아니라, ‘식욕’의 영역으로 전환된 것이다. 예컨대, ‘폴렌타와 양파’ 혹은 ‘폴렌타와 라르드가 올라간 쓴 채소’ 같은 전통적인 농촌 음식은 너무 궁핍한 식사처럼 느껴졌고, 이들을 아무 보완 없이 다시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 반면, “생크림이 들어간 햄이 첨가된 쌀 샐러드”나, “200g의 시금치 탈리아텔레에 생크림 한 잔을 곁들인 요리”는 포크를 들기도 전에 포만감을 줄 만큼 과잉된 조합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요리들이 정말 ‘건강한 음식’일까? 영양학의 역설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건강’이라는 기준을 설정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기준을 바탕으로 재료를 뺏다 더했다 하며, 결국 단순함과 풍요, 쾌락과 건강이라는 상반된 원칙들을 하나의 상징적 식사로 합쳐 버리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1970년 이후, 사람들은 점점 더 환상과 신화, 가난한 식탁의 미학이나 소화기관을 도전하게 만드는 지나치게 풍성한 일품요리에 매료되어 갔다.

‘절제’라는 화두는 1970년대 내내, 유행, 기회, 간식 문화 등과 연계된 무수한 제안들로 전개되었다. 식사는 더 이상 가족의식의 일부가 아니며, 종종 간식처럼 흘러가거나 입맛만 다셔보는 식으로 변했다. 그러므로 오히려 구내식당의 고정된 식탁 위 식사가 새로운 ‘식사 의식’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처럼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식사 방식이 대세가 되자, ‘샌드위치 레시피’, ‘타르틴과 피자’, ‘후라이’, ‘작은 파이’ 등의 요리를 다룬 새로운 요리책이 속속 등장했다. ‘피크닉’이 전통적인 여가의 배경이자 이상적인 식사 형태로 떠올랐고, 식사 장면은 『풀밭 위의 점심(Le Déjeuner sur l’herbe)』처럼 회화적으로 재현되었다. 이때부터 다양한 간식 형태는 젊은 세대의 식욕을 대변하는 대표적 형식이 되었다.

엘레나 살라(Elena Sala)는 이를 ‘청바지 속 요리(cucina in jeans)’라고 불렀다. 시간이 없고, 돈이 부족하며, 의욕도 없는 상황에서 이것은 새로운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즉, 포장 간식이나 바게트 샌드위치 대신, 스스로 만든 음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일정 부분 ‘가난한 요리’처럼 산업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기존의 격식을 희생하더라도 자신만의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청바지와 샌드위치는 그때부터 긴 여정을 함께 시작했다.

 

단일 접시 요리(Piatto unico)의 의미와 한계

단일 접시 요리, 다시 말해 ‘피아토 우니코’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시다. 이 개념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각 요리가 그 자체로 충분히 배를 채우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양이 많거나 먹는 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2인분도, 다른 코스도 필요 없는 음식이라는 점에서다. 이런 요리를 '완전한 식사'로 상정한다면, 우리는 그 범위를 매우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코테키노 소시지와 베샤멜 소스를 곁들인 폴렌타, 참치와 멸치가 들어간 차가운 파스타 샐러드, 혹은 취향대로 고른 피자 한 판, 또는 리소토를 곁들인 오소부코 등이 있다.

사비나 로제로(Savina Roggero)는 『이탈리아식 단일 접시 요리』라는 저서에서 이러한 개념에 도전했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는 단일 접시 요리가 전통적인 세 가지 코스(전채-첫째 요리-둘째 요리)를 줄이고, 한 접시에 담아 간소화하면서도 포만감을 주는 식사 형태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동시에, 재료의 궁합, 조리와 서비스의 효율성, 즉시 소비 가능성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실험적 틀로 기능했다. 이는 새로운 요리의 경제학 속에서 등장한 하나의 절제 형식이었다.

하지만 그 제목은 여러 면에서 기만적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및 비유럽 지역의 다양한 ‘이국적 요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중 일부는 디저트를 포함해 하나의 코스로 충분한 정찬을 구성하기도 한다. 책의 뒤표지에서 밝히듯, 이는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의 결과물이다. 문제는, 예컨대 무사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2시간, 빠에야는 3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그런 요리를 단일 접시에 담았다고 해서 시간이나 돈을 아끼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실제 목표는 모든 것을 한 그릇에 담아 농축하고 강화하는 것, 단순화가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구성이다.

이러한 방식은, 이전에 등장했던 샌드위치, 토마토와 모차렐라 샐러드, 포카치아 한 조각, 파리나타와 같은 조리법 이후에 나타난 식사 구성의 재프로그래밍 중 하나다. 로제로는 세 가지 코스의 사치를 한 접시에 담아내려는 시도에서, 절제, 건강식, 간편식, 즉석식과 그 정반대인 요리의 풍성함을 공존시키는 역설을 구성한다. 이 안에는 기호와 과잉, 즉 소박함과 탐식이 동시에 숨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볼 때, 1970년대 들어 경제 성장기 이후 소비 감소의 필요성은 사회 전반에서 감지되었고, 정부의 '긴축 정책(austerity)'과 함께 공식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요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건강에 대한 인식, 공동 식사의 방식, 외식 문화의 변화와 같은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어떤 요리책도 이러한 현실을 본질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다만 음식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을 형성했을 뿐이다. 요리라는 사물의 가치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과거의 가난한 식탁에서 또는 더 발전된 나라의 식습관에서 음식을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혹은 ‘간결하게’,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새롭게’라는 고정 관념 속에서 새로운 요리를 재구성했다.

그렇다면 대중은 이런 변화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했을까? 문제는, 저자들이 대부분 이 변화가 어떤 문화적 맥락 안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덕분에 요리책을 구입하고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왜 그것을 찾는지, 왜 요리라는 문화가 '청바지처럼' 변화했는지, 왜 어떤 초대의 중심에 ‘파스타+고기’ 대신 거대한 접시 하나 혹은 사람 수만큼 개별 접시가 놓이게 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이러한 상징적 변화는 식문화에서 여전히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 즉, 무엇을 덜고 무엇을 더할지,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해석이 부재하다. 독자는 요리책을 사며 자신이 과거의 영원한 요리를 되살린다고 느끼고, 제목이나 레시피 속의 혁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마치, 새로운 꽃이 꽂히길 기다리는 화병처럼 이탈리아 요리는 고정된 채로 있고, 미식가들과 요리사들, 언론인들, 식도락가들은 여전히 ‘아름답고 맛있는 것’에 대한 숭배를 반복한다.

그들은 종종 파란 꽃잎을 가진, 혹은 무지개색 쌀샐러드처럼 다채로운 아이디어 하나를 살짝 얹어 넣으며 자신이 독창적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똑같은 아이디어를 복제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적 축소와 절약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자신에게서 그리고 타인에게서 무엇을 덜어내고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영화와 함께하는 식문화

1973년은 단지 ‘긴축(austerity)’만 이야기되던 해가 아니었다. 그 해 극장에서는, 1970년대의 식문화를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두 편의 흥행 영화가 상영되었다. 바로 **《아마르코르드(Amarcord)》**와 **《위대한 폭식(La grande abbuffata)》**이다.

영화는 언제나 유행을 선도해 왔고, 대중문화에 결정적인 방향성을 제시했으며, 이탈리아인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왔다. 동시에, 영화는 그들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관계를 재정립하도록 유도하는 거울 역할을 해왔다.

배우가 식탁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장면이 펼쳐지면, 관객은 곧장 따라 하고 싶어진다. 이는 단순한 모방 욕망이 아닌, 화면 속 음식에 대한 식욕 자체가 관객에게 전염되는 경험이다. 그 욕망은 결국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극장에서, 즉 검열과 광고에 지배된 텔레비전이 아닌, 스크린이라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감각적으로 ‘먹는 행위’의 감정을 일깨우게 된다.
이를 통해 1970년대 이탈리아 요리가 직면한 문제와 그에 대한 해답이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로마의 한 미국인》이라는 이전의 영화는 이탈리아인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가상의 미국화에 대한 대조를 통해, 하나의 상징인 커다란 접시의 마카로니로 이탈리아인의 욕망과 본능을 구체화했다.
반면 《아마르코르드》는 문제의 구도를 전복시키며, 단지 국물에 담긴 수프 한 그릇으로 되묻는다.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는 《8½》과 《아마르코르드》에서 ‘기억’이라는 개념을 인간 존재의 핵심 원리로 제시한다. 기억은 우리가 중요한 것들—사랑, 지성, 삶의 기쁨—을 판단하고 구성하는 도구다.

이러한 접근은, 당시 이탈리아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단순히 과거, 즉 파시즘 시대라는 닫힌 역사적 배경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영화는, 파시즘이 끝난 지 40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떠돌고 있던 흔적들, 그리고 그 기억이 현재와 뒤섞이면서 작동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음식의 기억, 식문화의 역사

우리의 요리 역사 또한 이탈리아의 전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이며, 경제나 정치만큼이나 우리 삶의 흐름을 규정한 중요한 요소다.

전쟁 직후, 이탈리아 국민이 어떻게 먹었는지,
그리고 1960년대 경제 성장기 동안, 풍요와 희망이 어떻게 식탁에서 구체화되었는지를 떠올려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식문화의 역사는 때로는 잘 구성된 인류학적 보고서처럼 복잡하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며,
또 어떤 때는 출판문화의 역사, 특히 요리책의 역사로 간결하게 정리된다.

이 과정에는 영화, 블로거, TV 프로그램, 디지털 방송채널 등 다양한 미디어의 개입이 있었으며,
우리는 이 채널들을 통해 전 세계의 요리 문화와 소통하는 창을 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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