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보다 400 앞선 고려 말 쇠고기를 맛으로 먹기 시작해
“우리 조상들은 한우 한 마리에서 100가지 맛이 나온다고 해 한우를 ‘일두백미(一頭百味)’라고 불렀다. 조상들은 한우를 120부위로 세분화했고, 부위별 특징에 따라 용도를 달리해 음식에 활용하며 다양한 맛을 표현했다. 문화인류학자 ‘마거릿미드’는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소를 35부위로 나눠 먹는데, 한국은 무려 120부위로 나눠 먹는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흔히 들어온 이야기다. 출처도 불명확한 마거릿 미드의 이 말을 근거로 우리는 일두백미의 한우에 대해서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
혹자는 먹을 것이 없었던 시대에 헝그리정신으로 소 울음소리만 빼고 맛나게 잡아먹어서 일두백미의 맛을 찾았다고 주장한다. 먹을 것이 없으면 그냥 한마리 다 삶거나 끓여서 먹는 돼지고기처럼 먹으면 되지 굳이 120부위로 나눠 세세한 맛을 즐겼을까? 그것도 상당히 과학적이고 다양한 요리법으로….
고기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전에 몰랐던 많은 걸 새롭게 알게 됐다. 그중 하나가 지금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쇠고기 문화는 영국인들에게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마블링(근내지방도) 중심의 등급제가 1927년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하지만 인류사에서 쇠고기를 맛으로 즐긴 대표적인 민족은 영국인들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서 모두 쇠고기산업이 발전한 것은 영국에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서였다.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쇠고기산업 역시 북미지역이 겨울이 돼 수출이 어려울 때 영국에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발전한 것이다.
유럽은 소를 낙농이나 일소로 이용하기 위해서 사육했다. 쇠고기 맛에 집중한 민족은 영국인들이었다.
그래서 서양의 고기용 소들 중 대부분이 영국에서 품종 개량이 됐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소를 35부위로 나눈다고 이야기한 것은 그만큼 쇠고기를 맛있게 먹는 대표적인 민족인 영국과 미식이 발달한 프랑스가 쇠고기 맛에 집착하면서 찾아낸 쇠고기 부위가 35부위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다. 1872년 육식을 시작한 일본은 겨우 15부위로만 나눠 먹었다.
[고려 말부터 쇠고기 맛으로 먹어]
그럼 왜 우리 민족은 쇠고기의 맛을 가장 세분화할 수 있었을까? 그건 쇠고기를 맛으로 즐겼던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쇠고기를 맛으로 먹기 시작한 건 고려 말 몽골 간섭기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서 발명한 것처럼 우리 민족이 쇠고기를 맛으로 먹은 최초의 민족이라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로스트 비프(Roast Beef)는 우리가 일본인을 왜놈이라고 하듯 프랑스인들이 영국인을 조롱할 때 쓰는 말인데 영국 육식의 역사를 보면 중세에는 쇠고기를 맛보다 자양강장제로 생각한 것 같다.
영국인들이 쇠고기를 맛있는 식사로 즐기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기였던 18세기 전후로 봐야 한다.
이는 우리 민족보다 400년 정도 늦게 쇠고기 미식을 즐기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민족이 쇠고기 부위를 많이 찾은 건 그만큼 쇠고기 미식을 즐긴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길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1233년 고려 재상이 된 이규보는 ‘단우육(斷牛肉)’, 다시 말해 ‘쇠고기를 끊다’라는 제목의 시를 한 수 지었다.
“내가 지난번에 오신(五辛)을 끊고서 이를 기념해 시 한 수를 지었던 적이 있다. 그때 쇠고기도 함께 끊었다고 했지만 마음만 그랬을 뿐이었다. 눈앞에 쇠고기가 보이면 바로 먹었으니 어찌 끊을 수가 있었겠는가(동국이상국집에 실린 ‘단우육’의 발문).” 이렇게 몽골 간섭기 이전에도 쇠고기를 먹었던 기록들이 남아 있는데 우리 민족이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1872년에 다시 육식을 시작한 일본에 의해 왜곡된 식민사관이라고 봐야 한다.
13~14세기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쇠고기 맛에 집중한 우리 민족은 세계 최고의 쇠고기, 한우를 키우고 있다. ‘일두백미를 즐겼다’ ‘120부위로 나눠 먹었다’는 말은 가난한 조상들이 쌀 한 톨 아껴 먹듯 쇠고기를 먹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쇠고기 미식을 시작한 긴 역사 속에서 쇠고기 맛에 심취했었다는 걸 의미한다.
조선 양반들의 쇠고기 소비에 대한 깊은 연구와 잊힌 120부위의 복원, 그리고 일두백미의 한우 맛을 찾아야 이 땅 위의 자존심 한우의 참 문화적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 음식학 연구의 역사는 일본인들이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작돼서인지 왜곡된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이제는 이런 현실을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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