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고기 지금 우리가 먹는 고기와 완전히 달라
요리의 과학자라 불리는 해럴드 맥기의 유명한책 <음식과 요리> 중에 ‘도시형 고기’와 ‘농촌형 고기’라는 개념이 나온다.
고기의 역사나 고기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도시형 고기와 농촌형 고기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역사 속에서 나오는 고기가 지금 우리가 먹는 고기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도시형 고기, 과?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 동물로부터 고기를 얻는 데는 두 가지 전통적이고 오래된 방법이 있으며, 각각 다른 육질을 가진 고기가 생산된다.
한 가지 방법은 생의 동반자로서 그 동물이 가진 고유한 가치대로 키우는 것이다. 황소와 말은 들판에서 부리기 위해, 닭은 알을 얻기 위해, 암소·양·염소는 우유와 털을 얻기 위해 키웠다.
그들이 고기로 변하는 것은 오로지 더 이상 본래의 가치를 생산할 수 없을 때였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동물을 도축하는 것은 살아 있음으로써 가치 있었던 자원의 마지막 활용법이었다.
고기는 성숙한 ?물에게서 나왔으며 따라서 잘 단련되고 상대적으로 질겼으며 지방은 없지만 맛이 풍부했다. 이러한 방법은 선사시대부터 19세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동물로부터 고기를 얻는 두 번째 방법은 오로지 고기를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이다. 동물을 잘 먹이면서 불필요한 활동을 억제해 연하고 맛이 순하며 기름진 살코기를 만드는 것, 비교적 어릴 때 도축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 역시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돼지와 수평아리, 낙농동물의 수컷들에게 주로 적용됐다.
도시의 등장과 더불어 식용동물은 이집트 벽화에 그려지고, 로마의 작가들에 의해 기술됐듯이 오로지 그러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도시의 엘리트만을 위해 좁은 우리에 갇혀 지방을 늘렸다.
이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고기는 헤럴드 맥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시형 고기다. 공장식 축산 이전에도 권력자들은 나름의 고기맛을 위해 고기를 키웠다.
[도시형·농촌형 고기에 따라 요리법도 달리 발전] 농촌형 고기인지 도시형 고기인지가 중요한 이유는 고기 요리가 도시형 고기로 만든 건지 농촌형 고기로 만든 건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쇠고기, 같은 부위라도 농촌형 고기의 근육과 지방 함량은 완전히 달라서 요리법과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
조선 시대의 쇠고기 조리법에 연화법이 많은 건 이시대의 보편적인 소는 다 농촌형 고기였기에 질겼기 때문이다. 또 돼지고기 요리에서도 고기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각종 향미채소를 사용했는데 이 역시 돼지고기도 농촌형 고기였다는 걸 의미한다.
서구에서는 중세 이후 돼지를 키우는 목적이 고기를 얻기 위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해방 전후까지도 돼지는 퇴비를 생산하는 채비동물이자 청소동물의 역할이 컸다. 그래서 조선 시대 돼지는 덩치가 그렇게 크? 않은 30㎏ 내외의 소형종으로 개량이 이뤄지지 않았다.
덩치가 커지면 먹이의 양이 늘어 농가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소형종의 돼지를 퇴비를 얻기 위해 키웠다. 1900년대 권업모범장의 실험에 의하면 조선의 재래종 돼지의 퇴비 생산능력은 덩치가 두 배나 큰 <버크셔>보다 많았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조선의 돼지는 채비동물이었다.
서구의 소는 역우 이상으로 우유 생산이 목적이었는데, 우리 소는 우유 생산에 집중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한우가 세계 최고의 맛을 가진 쇠고기가 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도시형 고기가 있었다. 조선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제례용·빈례용 돼지를 궁에서 키웠는데 이들 돼지들은 일반 농촌에서 채비동물로 키우던 돼지와는 품종도, 먹이도, 사육방식도 달랐다.
태종은 제례용 돼지를 수입했는데 “당저(唐猪)는 적당히 요량해 남겨두어 기르고, 나머지는 외방 각 도로 보내어 번식하는 사료인 쌀·콩은 또한 경중(京中)의 예에 의해 양사(養飼)하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이 수입한 ‘당저’는 동북·화북 지방에 있었던 ‘민저(民猪)’라는 품종으로 추측된다. 조선 시대 궁에서 제례용으로 키우는 돼지는 중국에? 수입된 것으로 소처럼 화식 사료를 먹여 감당하기 어려운 사육비가 들어갔다.
한양에서 돼지고기 값은 쇠고기 값보다 비쌌다. 돼지 한 마리의 가격이 소 두 마리 가격 정도였다고 하는데, 보통 소 한 마리가 돼지 네 마리분의 고기를 생산한다고 계산하면 돼지고기가 쇠고기보다 8배가량 비쌌다고 추정할 수 있다.
조선 시대 한양의 양반들이 돼지고기를 기피하고 쇠고기를 즐겼던 것도 어쩌면 고기 맛의 차이가 아니라 고기 가격의 차이일 수 있다. 조선 시대 도시형 고기 당저는 쇠고기보다 훨씬 비싼 고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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