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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마케터 김태경박사 칼럼

고려 도경 속의 고기 이야기

by Meat marketer 2025.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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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 육식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근거 희박해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거의 모든 음식에 관한 책, 심지어 고기 관련 단체에서 용역을 줘 연구한 보고서도 우리 민족의 육식 생활에 대해 대부분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고려 전반기는 불교의 번성과 권농 정책으로 육식 문화가 위축되고 절제되는 시기였다. 고려의 왕들은 여러 번에 걸쳐 소 도축금지령을 내리고 금령을 어겼을 때는 살인죄에 준하는 자자형(刺字刑)을 내려 도축을 엄격하게 통제했다…<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살생을 꺼리는 풍조 때문에 도축이 서툴러 고기 맛을 버린다고 할 정도로 고려 전반기에는 육식 문화가 위축돼 있었다.” <고려도경>은 1123년(인종 1년) 송나라의 사절 서긍(1091~1153년)이 고려에 사행을 다녀왔다가 지은 책으로 본래 제목은 <선화 봉사 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다. 외국인으로서 직접 보고 겪었던 12세기 고려의 모습과 고려인들의 생활상 등이 기록 돼 있다.

“고려는 정치가 심히 어질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相臣)이 아니면 양과 돼지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다만 사신이 이르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길렀다가 시기에 사용하는데, 이를 잡을 때는 네 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그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물로 씻는다. 만약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쳐서 죽인 뒤에 배를 갈라 내장을 베어내고, 똥과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 비록 국이나 구이를 만들더라도 고약한 냄새가 없어지지 아니하니, 그 서투름이 이와 같다.” [방자구이는 오늘날 로스구이의 원조] 서긍은 고려인이 도축을 제대로 할줄 모른다고 했지만 서긍이 표현한 것처럼 산 돼지를 불에 던지고 몽둥이로 때려잡는 도축법은 중국에서도, 로마에서도 돼지를 맛있게 잡아먹는 방법 중 하나였다.

또 한나라 때의 무덤에서 발견된 조각을 보면 개·소·돼지를 도축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개를 잡을 때와 돼지를 잡을 때 똑같이 몽둥이를 썼다.

이는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한 도축법으로 도축 전 돼지를 스트레스 받게 해 근육을 맛있게 만들고, 도축 직후 요리해 먹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상육은 지금처럼 도축 후 유통을 할 때는 부패가 쉬워지는 문제점이 발생하지만 도축하자마자 고기를 요리해 먹었던 옛날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대량으로 도축하고 동물복지에도 신경을 쓰기 때문에 몽둥이로 때려서 돼지를 잡을 수는 없다.

이같이 고도의 도축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고려인 들을 어설픈 도축법을 가졌다고 폄훼한 송나라 사신 서긍의 서술에도 문제가 있지만, <고려도경> 도축 편을 근거로 우리 민족이 고려 초기에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나 후대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

<고려도경> 제8권 인물 편에 수태 사상 서령 이자겸 편에는 “사방에서 궤유(饋遺ㆍ선물)해 썩는 ?기가 늘 수만 근이었는데, 여타의 것도 모두 이와 같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권력자에게 귀한 고기를 선물했던 고려 시대의 육식 생활을 보여준다.

또한 최초의 방자구이에 관한 기록도 <고려도경>에 있다.

제21권 조례 방자 편을 보면 “평상시에 고기를 먹는 일이 드물어 중국 사신이 올 때는 바로 대서(大暑)의 계절이라 음식이 상해서 냄새가 지독한데, 먹다 남은 것을 주면 아무렇지 않게 먹어 버리고 반드시 그 나머지를 집으로 가져간다”고 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로스구이의 원조 격인 방자구이를 말하는 것으로 <고려도?> 방자 조에도 방자라는 하인은 박봉이라 채소 등이 급여될 뿐이어서 간혹 윗사람이 먹다 남긴 고기 찌꺼기가 비록 조금 변질돼 냄새가 나도 달게 먹고 집에 가지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왜곡] <고려도경>의 이자겸 편이나 방자 편에 나오는 고기 이야기를 볼 때 고려 초기에 육식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런데 왜 이 같은 주장이 정설로 인식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주장은 1978년 고(故) 이성우 교수의 고려 이전 한국식 생활사 연구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그가 저서 속에서 ?장한 고려 전기 육식 문화 위축을 아마 그 당시에는 어느 학자도 반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공부한 이성우 교수의 이력으로 짐작해 보면 이 교수 연구의 많은 기초 자료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된 우리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마 <고려도경>에 대한 일본인 학자들의 오랜 연구도 참고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1200년 동안 육식을 하지 않아서 왜소한 자신들의 모습에 비해 기골이 장대한 조선인들의 모습에 열등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육식 문화슴 몽골 침략자들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몽골 침입 이후 쇠고기에 대한 인기는 몽골의 영향이 컸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14세기부터 쇠고기를 즐겼다면, 이는 우리 민족이 쇠고기 육식 문화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전시킨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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