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이란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고 자연환경에서 자유로이 떠돌아다니는 생명체를 말한다. 야생동 물의 범위는 조류·포유류·어류·파충류·양서류 모두를 포함하지만 어류를 제외시키는 경우도 있다. 우리 조상 들은 이들 야생동물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알아보자. 글 김태경(건국대학교 미트컬쳐비즈랩 교수)
일상적인 요리는 물론 질병 치료에도 활용
[우리 조상들과 야생동물]
원시시대부터 야생동물은 인간의 생활과 아주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시대에 따라 가치를 달리해 왔다.
한반도에는 특히 사슴이 많았다. 또 한반도 남쪽지역은 야생돼지들이 가축으로 키워진 돼지보다 상당 기간 소비가 더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동물은 첫째, 생태적 가치로 생태계 내에서 소비자와 분해자로서 항상성 유지에 기여한다.
둘째, 경제적 가치로 야생동물은 고기·모피·뿔 등을생산·공급한다.
셋째, 오락적 가치로 수렵을 통해서 우리 선조들은육체적·정신적 건강과 활력을 얻을 뿐 아니라 군사 훈련도 겸했다.
넷째, 과학적 가치로 한의약재로 쓰였다.
다섯째, 학문적·예술적 가치로 문학·미술·음악·춤등의 예술적 소재를 제공해 줬다.
[멧돼지, 청동기 시대 대표적 사냥감]
초기 청동기시대 울산 태화강 상류에 그려진 반구대암각화에는 고래를 잡거나 맹수를 추격하는 사람의 모습, 고래·사슴·호랑이·멧돼지가 그려져 있다.
기원전 290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암각화에 멧돼지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그 시대에대표적인 사냥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을 대통일 민족국가로 서술한 역사책인 <환단고기>에도 그 당시 멧돼지가 사육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멧돼지 사냥을 할 때에는 ‘돼지창’이라는 창을 사용했다.
창을 멧돼지의 명치에 찔러 잡았다.멧돼지 사냥은 사람들이 모여서 했는데 멧돼지가 보이면 창으로 찔렀다. 찌르는 순서대로 ‘일창이오, 이창이오, 삼창이오’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법도인데, 찌른 순서에 따라서 나눠 갖는 멧돼지의 부위가 달랐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강원도에서는 이렇게 멧돼지사냥을 하곤 했다.
[고려시대, 돼지 가축화…야생돼지도 많아]
고려시대에 주로 사냥으로 잡은 고기는 사슴(녹·鹿),노루(장·獐), 토끼(토·兎), 여우(호·狐), 고니(곡·鵠), 멧돼지(산저·山猪) 등이었다.
이때 사냥으로 잡아먹은 대표적인 야생동물은 사슴이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의 한사람 목은 이색이 멀리 떨어진 안주에서 사슴고기를 보내준 박원수에게 답하는 시를 보내기도 했다.
돼지는 고려시대 이미 가축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나 산돼지(산저·山猪) 또는 들돼지(야시·野豕)라 불리는 야생돼지도 많이 있었다.
공민왕 7년(1358년) 3월 무신일에 산돼지가 도성 안에 들어오고, 우왕 7년(1381년) 10월 을해일에는 산돼지가 당시 왕이 거처하던 궁궐 남쪽에 들어왔다.
왕궁에까지 산돼지가 자주 출범하는 것으로 보아 산돼지가 매우 흔했으며, 이들은 집돼지와 함께 식용으 로 이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노루의 존재 기록은 이색의 문생인 평장사 안인기로부터 말린 노루(건장·乾獐)를 받은 것과 염흥방이 보내 준 노루고기(장육·獐肉)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꿩(치·雉)은 고려시대에 사육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대부분은 야생이었다. 야생꿩들이 궁에서도 자주 목격됐다. 충렬왕은 원나라에 들꿩(야치·野雉)을 보냈다.사냥으로 잡은 꿩고기는 집에서 키우는 닭처럼 쉽게고기로 이용할 수 있었다.
토끼는 고려시대 사육도 했으나 주로 사냥해 잡아먹는 야생동물이었다.고니는 원나라에서 중시하던 동물이어서 우리의 기록에도 그들과 관계가 밀접해지는 충렬왕 때에 주로등장한다.
충렬왕 15년(1289년) 12월 경인일에 궁전배(弓箭陪)인 중원후(中原侯) 온이 원나라에 가는데 대장군 박의 가 따라가 고니고기(곡육·鵠肉)를 바쳤다고 한 것이 첫기록이다. 그 후 원나라에 계속 고니고기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일상생활에 야생동물 이용]
조선시대에는 강무라는 왕이 친림하여 실시하는 군사훈련으로서 수렵대회가 있었다.잡은 야생동물 중 큰 야생동물은 관(官)에서 갖고, 작은 야생동물은 개인이 가지고 갔다.야생동물의 고기는 사자를 시켜 종묘에 보내 제사를지내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요리해 잔치를 베풀었다.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강무는 오락과 군사 훈련 그리고 의례까지 많은 역할을 했다.조선시대 야생동물의 이용이 얼?나 일상적이었는지는 1670년(현종 11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통해 잘 알 수 있다.<음식디미방> 속 146가지의 요리법에 나오는 야생동물을 이용한 요리로는 자라갱·꿩지히·꿩침채 등이있다. 그중 돼지고기 요리를 ‘가제육( )’ ‘야제육( )’이라고 표현했는데 야생과 집에서 기른 고기는 조리법이 서로 달랐음을 알 수 있다.이외 <음식디미방>에는 참새·꿩·자라·멧돼지·곰까지 여러 야생고기 요리가 소개되고, 다양한 개고기요리까지 소개돼 있다. 이를 미뤄볼 때 조선시대 사냥으로 잡은 야생고기의 식용은 적어도 양반가에서는 일반화돼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조선시대 양반들은 야생동물을 잡아서 애완용으로도 길렸다. 김홍도의 ‘삼공불환도’라는 그림을 보면 현재는 멸종위기종인 두루미가 집안 뜰에서 애완동물처럼 길러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두루미는 고기 맛이 좋아서 조선시대 임금만 먹을 수있는 식재료였다. 이렇게 귀한 두루미를 집에서 길렀 다는 것은 그림 속 집주인이 당시 고위층 인사였을 것이라는 근거가 된다.
<꽃사슴> <마록> 등 수사슴의 미골화된 어린 뿔을채취해 말린 녹용 등은 한약재로도 많이 이용됐다.
조선시대 궁중의 식이요법 중 치질 치료에는 삵고기와 멧돼지 생식기를 썼다.
‘치질로 인한 동통(疼痛)을 치료하려면 삵고기로 국을 만들어 먹거나 포(脯)를 만들어 먹는다’ ‘세 번을 넘 지 않아 차도가 없을 수 없다. 이 고기는 심히 신묘하다’‘치질로 피가 나오는 것을 멈추게 하려면 멧돼지 수컷 의 생식기를 껍질째 태운 재를 미음에 넣어 공복에 먹으면 즉시 그친다’고 전해지고 있다.
[매사냥, 야생동물 길들여 이용한 대표적인 예]
우리 민족이 야생동물을 길들여 이용한 대표적인 예는매사냥이다.
옛날 기록에는 방응(放鷹)이라고 했다. 길들인 매로사냥을 하는 것은 활이나 총으로 짐승을 잡는 수렵 행 위보다는 자연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우리 선인들은 아득한 고대부터 매사냥을 했다.
<삼국사기>에 백제 아신왕은 성품이 호매해 매사냥을 좋아했으며, 법왕 1년(599년) 12월에는 살생을 금지 해 집에서 기르는 매와 새매를 전부 놓아주게 했다는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매 사육과 사냥을 전담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까지 설치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응방이 있고 응방군까지 있어서 매사냥이 한층 성행했음을 알려 준다.조선시대 태종은 언사냥을 즐겼으며, 연산군 때는 매사냥 때문에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중종 때는 일부 폐지했으나 민간에서 행하는 매사냥은 금지하지 않았다.
[야생동물 고기, 특이한 맛으로 차별성 있어]
우리나라에서 야생동물의 서식 실태를 보면 조선시대말까지는 다양한 종과 높은 밀도 그리고 훌륭한 수렵 문화를 가지고 있던 비교적 생태계가 안정된 풍요로운시대였다.
사슴은 16세기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 그 수가 급격히 줄었다. 세조에서 성종 무렵까지 곳곳에서 한 번 사냥에 보통 1000여 마리를 사냥할 수 있었던 <꽃사슴>은 17세기 이후 곳곳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큰사슴>은 개마고원과 백두산 일원 등 몇몇 곳에서 간간이 볼 수 있었다.일제강점기에 들어와 호랑이·곰·표범·늑대와 같은맹수류, 사슴류, 그리고 새들을 무분별하게 포획해 많은 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 현재 야생동물은 가치보다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유해한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야생동물은 우리 조상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자원이었다.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주로 고기와 가죽·뼈 등 생활에 필요한 식량과 용품을 얻었다.
사냥으로 잡은 야생동물의 고기는 피를 제거하지 않은 사체 상태 그대로이므로 질병과 기생충의 보균체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납을 함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따라서 외국에서는 시판 유통되는 사냥으로 잡은 야 생동물 고기의 경우 위생검사가 이뤄진다. 하지만 개인 사냥꾼들이 잡은 경우에는 이러한 위생검사가 이뤄 지지 않는다.이런 위생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사냥으로 잡은 야생동물 고기는 특이한 맛으로 차별성이 있다. 야생동물고기는 탄력 있는 육질과 강한 풍미를 지닌 경우가 많다. 이런 식감과 풍미는 그 동물의 생활양식과 먹이에따라 결정되며, 특유의 향은 동물의 ?이가 늘어날수록 더욱 뚜렷하고 짙어진다.
사냥으로 잡은 야생동물의 살은 일반 정육보다 조직이 치밀하고 색이 선명하며 지방질이 적고 단백질 함 량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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