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목적으로 사육 수백년 전 미식 단계로까지 발전
개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해 연하고 소화와 흡수가 잘되는 장점이 있어 체력이 약한 사람이나 병후 회복기에 있는 사람이 많이 식용해 왔다. 또 개고기의 지방은 쇠고기와는 달리 융점이 낮아 소화성이 좋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개고기는 더운 성질을 가졌고 돼지고기는 찬 성질을 가졌다. 때문에 복날에는 이열치열로 더위를 물리치고자 개고기를 먹? 왔다.
[고려 말 원나라의 영향으로 개고기 일반화]
개는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로 적어도 구석기시대인 대략 1만 2000년 전에 가축화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우리 선조들의 개 사육목적은 다른 가축처럼 가치의 다양성을 지닌다. 수렵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고도난 방지 또는 예물을 하기 위해, 또 군사 목적으로도이용됐다. 물론 식용으로도 이용됐을 것으로 본다.
중국에서 개를 식용으로 이용한 걸 알 수 있는 유명한고사성어가 있다. 바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논어>에 나오는 일화를 보면 2500년 전 춘추시대당? 중국에서 개고기는 황제의 제사상이나 하늘에 제 사를 지낼 때 쓰이던 일반적인 고기였다. 따라서 공자도 개고기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일반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 원나라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김문비란 자는 항상 개를구워서 대나무 조각으로 개털을 긁어내어 버리고 이것을 즐기고 있었다”고한다.
조선시대에는 식용이더욱 일반화돼 고기 이외에 창자 등을 이용한음식도 성행했다. <규합총서>에는 개고기의원리에 대해 적고 있으며 <부인필지>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음식디미방> <임원십육지> <해동농서> <고사십이집> 등에도 개고기 삶는 법, 찌는 법 , 굽는 법, 구장(拘醬) 등 우리나라의 독특한 요리법이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조선시대에 개고기가 일반화된 것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공자도 개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육개장이란말이 개장국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걸로 보아 개장이란 사람들의 보편적인 음식이었다.
안동 장 씨의 <음식디미방>을 보면 돼지고기 요리법은 가제육과 야제육 두 개뿐이다. 반면 개고기 요리법은 개찜·개순대·개장·꼬지·누리미 등 10여 가지가 넘는다. 이를 보면 17세기 경상도 안동지역에서는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선호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조선시대, 소나 돼지 잡아먹기 어려운 환경]
이미 수백 년 전에 개고기가 육식 보충의 차원을 넘어미식의 단계로까지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미식 단계 에는 몸보신 설도 걸쳐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간 형 정약전에게 띄운 편지에서애꿎게 개고기를 타박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선입견을지적하며 ‘개고기가 허약한 몸을 보하는 데는 그만’이라고 쓴 것은 몸보신 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음식 학자인 고(故) 이성우 교수는 고려 초기에는 닭고기·개고기·돼지고기·쇠고기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몽골 간섭기 이후 쇠고기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봤다.
몬순기후로 고온 다습한 한반도의 여름, 냉장·냉동시설이 없던 조선시대에 더운 열기 속에서 지친 노동에 몸을 보해 줄 수 있는 단백질로는 닭고기·개고기가 인기 있었지 대가축인 소나 쉽게 상하는 돼지는 잡아먹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1894년 조선에 온 오스트리아 여행가인 헤세 바프 텍의 여행기에 나오는 시장 풍경을 통해 조선시대 민중들이 부족한 쇠고기의 대체재로 개고기를 먹고 있었음을알 수 있다.
‘양념에 무친 개 머리 고기나 개 꼬리 곰탕은 조선인들의 별식이다. (중략) …푸줏간 주인은 매일 개고기를 팔려고 내놓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정부가 지정한 소수의 푸줏간(현방)에서는 하루에 소를 한 마리만도축하도록 돼 있어 많은 인구에 비해 육류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09년 8월 21일 법률 제24호 도축 규칙 제1조에는 ‘식용에 공하는 소·말·양·돼지 및 개의 도축 해체는 도축장이외에서 할 수 없다’며 개고기가 공식적인 식용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어 1909년 12월 28일 경기 관찰 도령 제3호 도축 규칙 시행세칙 제11조에 나오는 도축 해체료는 다음을 초 과할 수 없었다. 소 마리당 1원 20전, 말 마리당 1원, 양마리당 40전, 돼지 마리당 40전, 개 마리당 15전으로 돼있다.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면서 근대식 도축장을 운영했다. 그 도축장에서 식용으로 도축되던 가축에 개가 포 함돼 있다. 당시 개고기 소비가 일반화돼 있었음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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