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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마케터 김태경박사 칼럼

고구려와 돼지

by Meat marketer 2025.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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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에서 제사용 돼지 길러--- 하늘의 메신저 역할

 

고구려 시대에는 돼지를 관청에서도 길렀고 민간에서도 길렀다.제사에 쓸 돼지(교시)를 기르는 관청에서는 장생(掌牲)이라는 관리를 뒀다.<삼국사기>에는 “유리왕 19년(기원전 1년) 8월에교시가 달아나므로 왕이 탁리(託利)와 사비(斯卑)라는자로 하여금 뒤를 쫓게 했더니, 장옥택(長屋沢) 중에 이르러서 돼지를 찾아 다리 근육을 끊었다. 이 사실을 왕이 듣고 ‘제천(祭天)할 희생을 어찌 상하게 한 것이냐’며 두 사람을 구덩이에 넣어 죽였다.”라는 기록이 있다.이를 보면 고구려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필요한 희생물을 관리하는 자가 따로 있었으며, 희생용 돼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돼지가 찾아준 도읍지에서 최강국으로 군림]

 

제단에 바쳐진 돼지가 또 줄을 끊고 달아나는 일은 2년뒤인 유리왕 21년(서기 2년) 3월에도 벌어졌다.

<삼국사기> 13권 고구려본기에는 “유리왕 21년 3월에 교제(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쳤는데 왕이 장생 설 지에게 명령하여 이를 쫓아가게 했다. 국내성 위나암에 이르러서 돼지를 붙잡아 성 내 사람의 집에 가두어 두고 기르게 했다.”고 적혀 있다.그런데 그곳(위나암)을 둘러보니 여간 산수가 빼어나지 않았다.

이에 설지는 유리왕에게 돌아와 “제가 돼지를 잡으러 간 국내성 위나암은 산수가 깊고 험하며 농사짓기에 좋고, 사슴·물고기들이 많았습니다. 대왕께서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시면 백성이 살기 좋을뿐더러 전쟁의 걱정도 면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유리왕이 이 말을 듣고 그해 9월 직접 국내성 위나암을 둘러보고는 이듬해인 유리왕 22?(서기 3년) 10월도읍지를 졸본에서 국내성 위나암으로 옮겼다.돼지가 찾아준 이 도읍지 터에서 고구려는 424년 동안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고구려는 제천의식에서 희생할 돼지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를 둬 길렀는데 그 돼지가 궁중 사육장을 벗어난다는 것은 국가 문제로, 위기를 조성할 것이라 여겨불길하게 생각했다.이에 돼지가 사라지면 새로운 돼지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시를 꼭 찾아서 써야 했다. 이러한 인식은돼지가 곧 하늘이고, 국가라는 등식이 바탕에 있었기 때 문이다. 이는 곧 ‘돼지의 이동 = 하늘의 뜻 = 국가 수도의 이동’이라는 뜻으로 사직(社稷)의 이동을 의미했다.

새로운 수도의 의미는 ‘오곡이 풍성할 땅’이어서 백성에게 풍요를 가져오기 때문에 경제와 직결된 것이었 다. 곧 직(稷·오곡의 신)과 관련되고 단군신화의 주곡(主穀)을 의미한다. 또한 외세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고봤기 때문에 국방 즉 사(社·토지신)와 관련되고 단군신화의 주명(主命)에 해당한다.<삼국사기>에 따르면 하늘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이러한 하늘과 지상의 매개자가 제사에서 희생물로 바쳐지는 돼지다.

제사에서 돼지가 희생하는 목적은 국가의 발전이다.국가의 발전은 국토를 지키고 넓히며 백성을 배불리 먹 게 하고 편하게 한다.돼지가 가지는 의미는 하늘의 뜻을 지상(왕)에 전하는 영물인 셈이다. 당시의 돼지는 왕의 메신저요, 국가와 국민의 염원 매개체였다.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력은 인구 및 영토와 밀접하다. 입지조건이 좋은 수도가 국력과 국가 발전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돼지가 인구를 늘리고 국토를 확장할 수 있 는 수도를 정해 줬으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돼지는 다산성·대식성·건강성에 더해 인구의 증가, 국력의 확대, 사직의 안정을 의미했다.

[돼지, 고구려 왕자 낳을 왕비 계시하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산상왕 12년(208년) 11월 어느 날, 제사상에 올린 돼지가 도망쳤다. 희생용 돼지인 교시가 도망가서 담당관리가 잡으러 갔지만 쉽게 잡히지 않았다. 마침 주통촌이라는 곳에 당도했는데 20세의 아름다운 여자가 웃으면서 잡아줬다. 교시를 찾아온 신하는 왕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고, 왕은 그 여인을 찾아가서 잠자리를같이했다. 그 여자는 왕자를 낳고 소후가 돼 궁중에 들어왔다.돼지가 중매를 서 왕자를 얻은 것이다. 이는 하늘의뜻이 돼지로 발?됐으니 돼지가 곧 하늘의 메신저인 셈이다.산상왕은 즉위 13년 만에 오랜 소원인 후계자를 얻었다. 그래서 왕자 이름을 아예 돼지라고 불렀다. 한문으로는 교체(郊彘)다. 이 돼지 왕자가 11대 동천왕이다.동천왕은 산상왕 17년에 태자가 되고, 30년에 왕위에올랐다. 이 이야기는 하늘의 뜻으로 동천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만물은 인연을 전제로 존재한다. 관원들이 잡지 못한돼지를 젊은 아가씨가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여 인도 돼지가 지닌 신성함을 가진 특별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산상왕은 이러한 암시를 눈치채고 그 여인을 취했다.이 이야기는 신성한 돼지의 일면을 보여줌과 동시에이렇게 태어난 동천왕이 다른 왕들과는 달리 하늘이 내려준 특별한 왕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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