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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과 식육산업의 역사 인문학

아일랜드 농업과 영국 자본주의

by Meat marketer 2025.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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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농업과 영국 자본주의
19세기 후반 이후 축산업의 발전을 중심으로

アイルランド農業とイギリス資本主義
19世紀後半以降の畜産業の発展を中心にして

 

1846년 영국 곡물법 폐지는 아일랜드가 영국으로의 곡물 수출에서 어느 정도 독점적으로 누리던 지위를 무너뜨렸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 농업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막대한 노동 인구와 식량 수요를 겪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해외에서의 식량 수입을 급격히 늘려야 했다. 아일랜드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1840년대 중반 아일랜드를 덮친 대기근은 소규모 경작 농업의 쇠퇴를 가속화했고, 아일랜드 농업은 19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경작 농업에서 목축업 및 축산업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아일랜드는 영국을 위한 육류 및 유제품 공급 기지로 변모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20세기 초 아일랜드 자유국 수립(1922년) 전후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 글은 184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약 80년간의 아일랜드 농업 변화를 분석한다. 다만, 아일랜드의 육우 생산 및 수출에 대한 통계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정비되었기 때문에, 육우 생산과 수출에 대한 분석은 주로 20세기 이후의 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주요 내용

  1. 오트밀 (Oats):
    • 아일랜드에서의 수입 비중이 **88%**로 가장 높음.
  2. 대맥 (Barley):
    • 아일랜드 수입 비중 41%.
  3. 소맥 (Wheat):
    • 아일랜드 수입 비중 26%.
  4. 전체 곡물 수입:
    • 아일랜드에서 수입된 곡물은 전체의 **56%**를 차지.

주석

  • 오트밀: 귀리와 귀리 가공품.
  • 대맥: 맥주 및 보리 가공품 포함.
  • 소맥: 밀 및 밀가루 포함.

출처

B.R. Mitchell (편집), Abstract of British Historical Statistics, 1962, pp. 94-97에서 발췌.

 

제1도: 19세기 후반 영국의 곡물 및 육류 제품 수입

(단위: 100만 파운드)

그래프의 주요 항목

  1. 곡물 (穀物): 점선으로 표시.
  2. 육류 제품 (肉類製品): 실선으로 표시.
    • ① 쇠고기 및 양고기 (Beef and Mutton): 위쪽 실선.
    • ② 버터 및 마가린 (Butter and Margarine): 아래쪽 실선.

그래프 해석

  • 1856~1906년 동안의 변화:
    • 곡물 및 육류 제품의 수입량이 전반적으로 증가.
    • 곡물 수입은 초기부터 높았으나, 19세기 후반에 급격히 증가.
    • 육류 제품 수입도 꾸준히 증가했으며, 특히 쇠고기 및 양고기의 증가율이 두드러짐.

주석

  • 1856년, 1866년 데이터: 추정치(Computed Value).
  • 1876년 이전: 신고된 수입 가치(Declared Value).

출처

B.R. Mitchell (편집), Abstract of British Historical Statistics, pp. 298-300.


요약

이 그래프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곡물 및 육류 제품 수입량의 증가 추세를 보여줍니다. 곡물 수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쇠고기 및 양고기와 같은 육류 제품 수입도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증가는 영국의 산업화와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수요 확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경작 농업의 쇠퇴와 육우 생산 중심의 목축·축산업 발전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아일랜드에서는 경작지 면적이 크게 줄어든 반면, 목축용 농지 면적이 크게 증가했다(제2표 참조). 특히 밀 재배 면적은 1847년부터 1896년까지 반세기 동안 거의 완전히 붕괴되었다. 1847년 744,000에이커에 달하던 밀 재배지가 50년 동안 거의 전부(95%) 파괴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되었다. 귀리와 보리의 재배 면적도 크게 줄어들어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1846년 병해로 인해 대흉작이 발생했고, 이는 대기근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던 감자는 1856년에 어느 정도 생산량이 회복되었지만, 이후 다시 재배 면적이 감소했다. 반면, 경작지 감소와 대조적으로 목초지와 방목지는 크게 확대되었으며, 경작지 감소분과 거의 맞먹는 약 200만 에이커가 증가했다. 수확된 귀리의 상당 부분이 가축 사료로 사용되었지만, 귀리 재배지의 급격한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목축용 농지가 급격히 확장되었다.

 

1847년에서 1896년까지의 주요 변화

  • 작물 재배 면적 감소:
    • 소맥: 95% 감소 (744 → 37).
    • 귀리: 46% 감소 (2,201 → 1,007).
    • 대맥: 48% 감소 (433 → 216).
    • 합계: 63% 감소 (3,378 → 1,260).
  • 감자 재배 면적:
    • 1847년 284에서 1896년 156으로 약 45% 감소.
  • 목축용 농지 증가:
    • 목초지: 1,319 → 3,259 (약 93% 증가).
    • 방목지: 9,545에 도달.

주석

  1. 1856년 데이터: 1856년부터 사용 가능한 숫자는 이전 연도와 다른 방식으로 계산되었습니다.
  2. 1856~1896년 데이터: 이 데이터는 추정치이며 일부 불완전할 수 있습니다.

요약

1847년에서 1896년 사이 아일랜드 농업은 곡물 재배 면적의 급격한 감소목축용 농지의 증가라는 구조적 전환을 겪었습니다. 소맥과 대맥 재배는 거의 사라졌고, 감자 재배도 크게 줄어든 반면, 목초지와 방목지 면적은 대폭 증가해 아일랜드 농업이 목축 중심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경작지 면적 감소로 인해 아일랜드의 곡물과 감자 생산은 크게 줄어들었다(제2도 참조). 특히 밀 생산량은 1847년부터 1896년까지 15분의 1 이하로 감소했으며(982만 cwt. → 64만 cwt.), 귀리 생산량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3,798만 cwt. → 1,701만 cwt.). 감자 생산량도 대기근이 발생한 1847년 이후 10년간을 제외하고는 감소 추세를 보였고, 보리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19세기 중반 이후 아일랜드의 경작지 축소와 곡물 및 감자 생산량 감소는, 영국에 곡물을 공급해야 했던 아일랜드의 열악한 경작 농업이 쇠퇴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밀을 비롯한 곡물과 비교했을 때, 감자 생산량의 감소는 다소 불규칙한 양상을 보였고, 재배 면적 감소 폭도 상대적으로 작았다. 이는 감자가 아일랜드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그리고 최후의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농민들이 주식으로 감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제2도: 아일랜드 주요 곡물 및 감자의 연간 생산량 변화

(단위: 100만 cwt)


그래프 항목

  1. 귀리(오트밀): 그래프 상단, 가장 급격한 감소를 보임.
  2. 소맥(밀): 하단 점선, 초기 급격히 감소 후 일정 수준 유지.
  3. 대맥(보리): 하단 실선, 상대적으로 완만한 감소.
  4. 감자: 하단 점선, 대기근 이후 일정 수준 회복되었으나 점진적 감소.

1847~1896년 동안의 주요 변화

  • 귀리:
    • 1847년 약 37에서 1896년 약 16으로 급격히 감소.
  • 소맥:
    • 1847년 약 10에서 1896년 약 2로 대폭 감소.
  • 대맥:
    • 초기 약 7에서 감소했으나, 1896년까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준 유지.
  • 감자:
    • 1846년 대기근 이후 일시적 회복(1856년 약 5) 후, 점차 감소(1896년 약 3).

출처

  • B.R. Mitchell (편집), Abstract of British Historical Statistics, pp. 88-89.

요약

아일랜드의 주요 곡물 생산량은 1847년부터 급격히 감소했으며, 이는 대기근과 농업 구조 전환의 영향을 반영합니다. 특히, 귀리와 소맥은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으며, 감자 생산량은 대기근 이후 부분적으로 회복되었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했습니다. 반면, 대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며 농업 구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제3도: 가축 (단위: 10,000두) 및 건초 생산량 (1,000톤)


그래프 주요 내용

  1. 가축 수
    • 소(牛):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1896년 기준 최상단에 위치.
    • 양(羊): 초기에는 증가했으나, 19세기 후반 감소 추세.
    • 돼지(豚): 완만한 증가를 보였으나 일정 수준에서 정체.
  2. 건초 생산량
    • 점선으로 표시, 초기부터 꾸준히 증가.

세부 변화

  • 1847년:
    • 소, 양, 돼지 모두 낮은 수준에서 시작.
    • 건초 생산량도 상대적으로 적음.
  • 1856~1866년:
    • 소와 건초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
    • 양의 수는 안정적 증가.
    • 돼지는 완만한 증가.
  • 1896년:
    • 소와 건초 생산량은 최고 수준 도달.
    • 양의 수는 감소 추세.
    • 돼지 수는 일정 수준에서 유지.

출처

  • B.R. Mitchell (편집), Abstract of British Historical Statistics, pp. 84-85, 88-89.

요약

19세기 아일랜드에서 소와 건초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하며 농업 구조 변화의 중심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양은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으며, 돼지는 비교적 안정적인 증가를 보였으나 주요 축산물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건초 생산의 증가는 소 사육의 확장을 뒷받침하며, 목축업 중심의 전환을 나타냅니다.

 

목축용 농지 확대와 가축 두수 증가

아일랜드에서는 경작지 감소와 함께 목축용 농지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축 두수와 건초(hay) 생산량도 크게 증가했다. 1847년부터 1896년까지 소의 두수는 72%(259만 마리 → 441만 마리), 양과 돼지는 각각 87%(219만 마리 → 408만 마리)와 120%(62만 마리 → 141만 마리) 증가했다. 또한, 건초 생산량은 같은 기간 동안 두 배 이상(216만 톤 → 473만 톤) 늘어났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 농업의 구조적 전환은 완성되었고, 농업의 중심은 완전히 목축업과 축산업, 특히 소(육우 생산 및 낙농)로 이동했다. 농업 총생산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1913년 아일랜드 농업 생산 구조

1913년 아일랜드의 모든 농가가 판매하거나 자가 소비한 농축산물의 가치(value of Irish crops, livestock, and livestock products sold or consumed by the farmers and their families in Ireland in the year ended May 31, 1913) 중 **76%**가 소, 돼지, 가금류, 양 등 축산 관련 제품이었다. 이 중에서도 **소 관련 제품(육우, 버터 등)**이 전체 생산 가치의 약 **46%**를 차지했으며, 소 관련 제품 중에서도 육우 생산이 절반 이상을 차지해 전체 생산 가치의 **24%**를 기록했다(제3표 참조).


아일랜드 농업의 불균등 발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아일랜드 농업은 곡물 생산에서 육우 생산을 중심으로 한 목축·축산업으로 전환되며 불균등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아일랜드 농업이 영국의 식량 수요와 글로벌 시장 변화에 적응하며 생존 전략을 바꾼 결과로 볼 수 있다.

 

아일랜드 농업은 19세기 중반 대기근과 곡물법 폐지 등의 충격을 겪으며 경작 농업에서 목축·축산업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 양, 돼지 등의 가축 두수와 건초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으며, 20세기 초반에는 농업 생산의 대부분을 축산업이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육우 생산은 아일랜드 농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며, 이는 아일랜드가 영국 및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3도: 가축 (단위: 10,000두) 및 건초 생산량 (1,000톤)


그래프 주요 항목

  1. 가축 수:
    • 소(牛): 실선,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1896년에 최고 수준.
    • 양(羊): 점선, 중반까지 증가하다가 후반에 감소.
    • 돼지(豚): 하단 실선, 완만한 증가 추세.
  2. 건초 생산량:
    • 중간 점선, 초기부터 꾸준히 증가하며 목축업 성장에 기여.

연도별 주요 변화

  • 1847년: 소, 양, 돼지 모두 낮은 수준에서 시작.
  • 1856~1866년: 소와 건초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
  • 1896년: 소와 건초 생산량은 최고 수준에 도달, 양은 감소, 돼지는 안정적으로 유지.

출처

  • B.R. Mitchell (편집), Abstract of British Historical Statistics, pp. 84-85, 88-89.

요약

19세기 아일랜드에서 소와 건초 생산량의 꾸준한 증가는 목축업 중심 구조 전환을 보여줍니다. 양은 감소 추세를 보이며 쇠퇴, 돼지는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합니다. 건초 생산량 증가는 목축업 확장을 뒷받침하는 주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주요 내용

  1. 소 관련 생산:
    • **소(생우/육용우)**가 가장 큰 비중(24%).
    • 소와 관련된 제품(버터, 우유 등 포함)의 총 비중은 **46%**로 농업 생산의 핵심.
  2. 돼지와 가금류:
    • 돼지 생산이 **14%**로 두 번째.
    • 가금류 및 계란은 10% 차지.
  3. 양과 양모:
    • 합계 **6%**로 비교적 낮은 비중.
  4. 곡물 생산:
    • 귀리와 대맥 각각 1,715,000£.

출처

E.J. Riordan, Modern Irish Trade and Industry, 1920, pp. 64-65에서 발췌.


요약

1913년 아일랜드 농업 생산에서 소와 관련된 제품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6%를 차지하며, 돼지와 가금류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는 아일랜드 농업이 축산업 중심으로 운영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발전하는 아일랜드 목축·축산업의 핵심에 위치한 육우 생산은 그 생산물의 대부분이 영국으로 수출되어, 전체 구조적으로 깊이 영국 시장에 종속되어 있었다. 즉, 아일랜드의 육우 생산은 아일랜드의 육우 생산이 아니라, 철저히 영국의 육우 생산이었던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아일랜드 육우 생산의 구조를, 영국 식육 시장으로 집결되는 형태로 전개되는 아일랜드 육우의 이동=거래, 송아지 생산부터 최종 비육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단계에서 볼 수 있는 지역별, 농장 규모별 분업을 분석함으로써 개략적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아일랜드 육우 생산과 영국 식육 시장

1. 아일랜드 내 육우 생산의 내부 조직

아일랜드의 육우 생산 내부 조직, 즉 육우의 이동(국내 거래) 및 지역별·농장 규모별 분업에 대해, 아일랜드 자유국 상공국 통계 주임(Director of Statistics in Department of Industry & Commerce)인 **J. 후퍼(J. Hooper)**가 1928년 그의 연구 보고서 Report에서 탁월한 분석을 수행했다. 이 보고서는 *아일랜드 자유국 농업 통계(Agricultural Statistics 1847-1926, 이하 '자유국 통계'로 약칭)*를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본고에서도 동일한 자유국 통계를 바탕으로 한 분석을 시도하며, 일부 보완 및 수정을 제외하면 대부분 후퍼의 분석을 따른다. 여기서는 이 자유국 통계와 후퍼의 분석에 대해 몇 가지 사전 설명을 덧붙이겠다.

 

백산국 통계는, 기록되어 있는 통계 수치의 대부분이 자유국 지역의 것에 한정되어 있으며,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로서 분리된 아일스터(Ulster) 6개 현(아일스터 9개 현 중, Antrim, Down, Armagh, Londonderry, Tyrone, Fermanagh의 6개 현이 분리되어 북아일랜드를 구성함)은 대부분의 경우 통계표에서 제외되어 있다. 필자는, 그러한 자유국 통계를 보완할 아일스터 6개 현의 통계 수치를 얻을 수 없었다. 또한, 이 자유국 통계 대신, 전 아일랜드 지역을 망라하는 통계 자료를 얻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분석은 거의 대부분 아일랜드 자유국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두 번째로, 위에서 언급한 자유국 통계에서 주로 사용된 통계 수치는, 자유국 설립(1922년) 이후인 1925년과 1926년의 것이다(이 점은 후아르도 동일하다). 아일랜드가 영국에 완전히 합병된 상태에서 자유국으로 전환됨에 따라, 아일랜드 농업의 형태에 어떤 변화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검토를 생략한 본고의 분석은 다소 불완전성을 남기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 자유국 통계에는 영국과의 무역 통계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아일랜드 육우의 영국 수출에 관한 통계 수치는 자유국 설립 이전의 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국 설립 이후 아일랜드 내부의 육우 생산(국내 거래를 포함) 구조와 자유국 설립 이전의 아일랜드 육우 수출 구조를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데에는 앞서 언급한 일정한 유보 사항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유국 설립 이후, 적어도 1930년대 초까지의 아일랜드 농업은 영국으로의 수출 산업이라는 구조적 성격 면에서 자유국 설립 이전과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육우 이동(거래) 상황의 분석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이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통계 자료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특정 연도의 일정 시점과 그 다음 연도의 같은 시점에 기록된 연령별 육우 두수(각 도별로 구분)가 주어진다면, 간접적이지만 소의 이동(거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유국 통계에는 1925년 6월 1일1926년 6월 1일 시점의 육우 연령별(1세 미만, 1세 이상 2세 미만, 2세 이상 3세 미만, 3세 이상) 및 도별 두수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더블린 도(Co. Dublin)**에서 1925년 6월 1일 시점의 1세 미만 소 두수1926년 6월 1일 시점의 1세 이상 2세 미만 소 두수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 후자가 더 큰 경우:
    이는 더블린 도로 1년 동안 1926년 6월 1일 기준으로 1세 이상 2세 미만의 연령이 되는 소가 구매 등으로 이주했음을 의미합니다.
  • 후자가 더 작은 경우:
    이는 1925년 6월 1일 시점에 1세 미만이었던 소의 일부가 1년 사이에 다른 도나 해외로 이출되었거나, 도살되었거나, 사망했음을 나타냅니다.
  • 전후 숫자가 거의 동일한 경우:
    이는 더블린 도에서 육우의 출입이 거의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후아르(Hoar)**는 이러한 분석을 위해 제4표를 작성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분석에 앞서

먼저 아일랜드를 현(縣)별로 구분한 약도와 현명을 제시하겠다(제4도 참조). 또한, 후퍼(J. Hooper)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에서 송아지가 태어나는 시기를 확인해 두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후퍼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송아지 중 **73%**가 3월부터 5월 사이에 태어난다. 따라서, 6월 1일 시점에서 1세 미만인 소의 73%는 3개월 미만1세 이상 2세 미만인 소의 73%는 15개월 미만2세 이상 3세 미만인 소의 73%는 24~27개월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제4표의 제2란은 1926년 6월 1일 시점에서 1세 이상 2세 미만인 소의 과거 1년간 이동, 즉 대부분 0~15개월 된 송아지의 이동 상황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제3란은 12~27개월 된 소, 즉 대부분 반쯤 비육된 소위 **스토어 소(store cattle)**의 이동을 나타낸다. 또한, 제4란은 24~39개월 된 소, 즉 스토어 소와 비육을 마친 **비육 소(fat cattle)**의 이동을 나타낸다. 다만, 제4란에서는 다음 사항에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는 1925년 6월 1일 시점의 2세 이상 3세 미만 소가 1926년 6월 1일 시점의 3세 이상 4세 미만 소 및 4세 이상을 포함한 3세 이상의 모든 소와 비교되고 있다. 따라서, 제4란의 수치는 24~39개월 된 소의 1년간 이동을 다소 엄밀성이 떨어지는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제1열은 그 대부분이 **월령 3개월 미만의 어린 송아지(young calves)**의 이동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런데, 제1열의 수치는 다른 열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산출되었다. 월령 3개월 미만의 어린 송아지의 1년 전부터의 이동을 명확히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는 송아지와 젖소 간의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 1926년 6월 1일 시점의 1세 미만 소의 두수를 동일 시점의 젖소 두수와 비교함으로써 이 어린 송아지의 이동 상황을 검토하였다.

즉, 26개 도 전체에서는 젖소 10마리당 어린 송아지 두수가 78마리였으며, 이 78마리를 초과하는 도는 1926년 6월 1일 이전에 어린 송아지를 이입한 것으로, 반대로 상당히 낮은 도는 어린 송아지를 이출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제4도: 아일랜드의 도별 구분 및 지도


도 목록

  1. Leinster 지역
      1. Dublin
      1. Meath
      1. Kildare
      1. Westmeath
      1. Louth
      1. Longford
      1. Offaly
      1. Laois
      1. Carlow
      1. Wicklow
      1. Wexford
      1. Kilkenny
  2. Munster 지역
    • 13. Tipperary
      1. Waterford
      1. Clare
      1. Limerick
      1. Kerry
      1. Cork
  3. Connaught 지역
    • 19. Galway
      1. Roscommon
      1. Mayo
      1. Sligo
      1. Leitrim
  4. Ulster 지역
    • 24. Monaghan
      1. Cavan
      1. Donegal
  5.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 27. Antrim
      1. Down
      1. Londonderry
      1. Armagh
      1. Tyrone
      1. Fermanagh

지도 특징

  • 아일랜드는 Leinster, Munster, Connaught, Ulster의 4개 주요 지역으로 나뉘며, 각 지역은 여러 도(county)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북아일랜드는 Ulster 지역의 6개 도(Antrim, Down, Londonderry, Armagh, Tyrone, Fermanagh)로 구성됩니다.

이와 같이, 월령 3개월 미만의 어린 송아지에 관해서, 그것들을 1926년 6월 1일 이전에 다른 도에서 이입하고 있는 도는 Meath, Kildare, Westmeath, Offaly, Carlow, Laoighis, Roscommon, Louth, Galway, Wexford, Kilkenny, Clare, Longford, Monaghan의 14개 도이며, 다른 도로 이출하고 있는 도는 Limerick, Kerry, Cork, Leitrim, Donegal의 5개 도이다. 또한, 이출입이 거의 없었던 도는 Wicklow, Tipperary, Waterford, Mayo, Sligo, Cavan의 6개 도로 확인할 수 있다(제4표 제1열).
한편, Dublin 도는 예외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곳에서는 젖소 두수에 대한 어린 송아지 두수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은데, 그것은 Dublin 도에 도시로 신선한 우유를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 많은 젖소가 다른 도에서 이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월령 0~15개월 소의 1925년 6월 1일부터 이듬해 6월 1일까지 1년간 이동에 관해서는(제4표 제2열),
이입 도는 Meath, Dublin, Kildare, Westmeath, Louth, Offaly, Longford, Roscommon, Galway의 9개 도이며,
이출 도는 Kerry, Limerick, Cork, Leitrim, Cavan, Monaghan, Waterford, Donegal, Mayo, Clare, Kilkenny, Laoighis, Tipperary, Wicklow의 14개 도이고,
이동이 거의 없었던 도는 Wexford, Sligo, Carlow의 3개 도로 확인할 수 있다

 

제5표: 1925년 6월 1일부터 1926년 6월 1일까지의 소 이동


표의 구성

  1. 도 이름
    • 아일랜드 각 도가 나열되어 있음.
  2. 소의 이동 상황 (연령별로 구분)
    • 0~3개월:
      • ○: 이동 있음
      • ×: 이동 없음
      • △: 적은 이동
    • 0~15개월:
      • ○: 이동 있음
      • ×: 이동 없음
      • △: 적은 이동
    • 12~27개월:
      • ○: 이동 있음
      • ×: 이동 없음
      • △: 적은 이동
  3. 지역 구분
    • A 지역: Meath, Kildare, Westmeath, Louth 등 이동이 활발한 지역.
    • B 지역: Laois, Carlow, Wicklow 등 일부 이동이 있는 지역.
    • C 지역: Cavan, Sligo, Mayo 등 이동이 거의 없는 지역.

지도 설명 (제5도)

  • 각 도는 A, B, C로 구분되어 있으며, 지역별 소 이동의 특성을 시각적으로 확인 가능.
    • A: 이동 활발
    • B: 중간 수준
    • C: 이동 거의 없음

특기사항

  • 주석에 따르면, 0~3개월 송아지의 이동은 100마리당 78마리를 기준으로 계산했으며, 이동량이 적은 도는 H = 5 이하로 표시됨.

요약

이 표는 아일랜드 각 도에서 연령별 소의 이동(이입/이출) 상황을 나타냅니다. A 지역은 이동이 활발, C 지역은 이동이 거의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월령 12-27개월의 스토어 소(store cattle)에 관해서, 이입 도로는 Dublin, Meath, Kildare, Westmeath, Louth, Longford의 6개 도를, 이출 도로는 Monaghan, Donegal, Cavan, Sligo, Cork, Leitrim, Clare, Kerry, Kilkenny, Waterford, Mayo, Roscommon, Wexford, Tipperary, Galway, Carlow, Limerick, Laoighis의 18개 도를, 그리고 거의 이출입이 없는 도로는 Offaly와 Wicklow의 2개 도를 들 수 있다(제3열).

마지막으로, 월령 24-39개월의 소(스토어 소 및 비육우)에 관해서는, 모든 도가 이출 상황을 보이고 있다(제4열). 즉,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이들 소는 육우 생산의 일종의 최종 과정에 해당하며, 그 중 절반 이상이 해외(영국)로 수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Dublin, Meath, Kildare, Westmeath의 동부 지역에서는 이 단계의 소들 대부분이 여전히 그 지역 내에 남아 최종 비육 단계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덧붙여, 이 제4열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이하의 아일랜드 내부에서의 육우 이동 분석에서는 생략하고, 수출 관련 논의를 다루는 후반부로 넘기기로 한다.

이와 같이 각 도별 육우 이동 상황을 검토한 결과,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지역 구분이 도출되었다(제5표, 제5도):

  • 육우 이입 지역(A): Dublin, Meath, Kildare, Westmeath, Louth, Longford, Offaly, Roscommon, Galway의 9개 도로 이루어진 동부 및 중부 지역.
  • 육우 이출 지역(C): Cork, Kerry, Limerick, Waterford, Tipperary, Donegal, Leitrim, Mayo, Sligo, Cavan의 10개 도로 이루어진 북서부 및 남서부 지역.
  • 중간 지역(B): Laoighis, Carlow, Wicklow, Wexford, Kilkenny, Monaghan, Clare의 7개 도.

이하에서는 이 세 지역에서의 육우 이동 및 생산의 특징을 명확히 함으로써, 아일랜드 내부에서의 육우 생산 및 유통의 전반적인 구조를 분석하고자 한다. 제6표는 육우의 세 지역별 이동 상황을 명확히 한 것으로, 동부 및 중부 지역에서는 월령 0-3개월의 어린 송아지에서부터 월령 12-27개월의 스토어 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연령대의 소가 대량으로 유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매월 나이의 젖소는 20 %증가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북서쪽과 남서부 지역에서 많은 양의 소가 다른 현으로 유출됩니다. 특히, 0-15 개월, 12-27 개월의 젖소의 비율은 높으며,이 지역에서는 3 개월 미만의 젊은 소 단계에서 10 분의 1이 번식 과정이 조금지나 갔다. 이 지역에서 생산 된 대부분의 소는 0-15 개월의 송아지의 3 분의 1, 12-27 개월 된 매장 소의 거의 3 분의 1이 다른 곳으로 유출되었습니다 수정 단계에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두 지역의 소위 중간 상태에서, 3 개월 미만의 젊은 소가 여기에서 옮겨졌지만 더 많은 연령 소가 옮겨졌습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각 현과 3 개 지역에서 쇠고기 운동의 상태를 고려해 왔지만,이 지역 운동 상태 측면 에서이 지역 운동은 쇠고기 운동뿐만 아니라 쇠고기 생산입니다 공급 상태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표 7은 인상 결론에서 3 개 지역에서 쇠고기 암소의 움직임 상태를 보여주는 대략적인 일입니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제2열 이하이다. 지금까지의 검토에서, 1926년 6월 1일 시점에서 1세 이상 2세 미만이 되는 소가 그 이전 1년 동안에 이동한 상황, 즉 월령 0~15개월 소가 1925년 6월 1일부터 1926년 6월 1일까지 이동한 상황에 대해, 동·중부 지역 전체는 유입, 중간 지역 전체는 유출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농장 규모별로 검토해 보면, 동·중부 지역이라 하더라도 30에이커 미만의 소규모 농장은 그러한 소를 유출하고 있으며, 반면 중간 지역이라 하더라도 100에이커 이상의 대규모 농장은 그러한 소를 유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제2열).

마찬가지로, 월령 12~27개월 소에 관해서도, 전체적으로는 유입 지역인 동·중부의 30에이커 미만 농장은 그러한 소를 유출하고 있으며, 중간 지역 및 북서·남서 지역의 100에이커 이상의 농장은 반대로 그러한 소를 유입하고 있다(제3열).

또한, 제4열의 월령 24~39개월 소에 관해서도, 거의 모든 아일랜드 농장이 그러한 소를 유출, 즉 수출하는 상황에서, 동·중부의 100에이커 이상의 농장에서는 그러한 소를 계속해서 비육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유입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농장 규모가 작아질수록 육우의 유출 정도가 커지며, 반대로 농장 규모가 커질수록 육우의 유입 정도가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에 치우침 없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C열을 기준으로 하여, 그 외의 소에 관해서는 대조적인 상황을 볼 수 있다. **젖소(a열)**와 **1세 미만 육우(b열)**의 대부분(약 60%)이 북서·남서부에 집중되어 있는 한편, **3세 이상(e열)**의 압도적인 부분(60%)과 **2세 이상 3세 미만(d열)**의 다수(40%)가 동·중부에 집중되어 있다.

나이가 더 어린 육우와 젖소의 사육은 북서·남서부가 중심적으로 맡고 있으며, 나이가 더 많은 육우의 사육(비육)은 동·중부가 중심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각 지역 농장의 경영, 즉 사육 또는 비육의 중점이 어떤 나이 단계의 육우, 어떤 종류의 소에 있는가라는 점에서도 표현된다(가로 비율). 북서·남서부에서는 1세 미만 육우와 젖소에 농가 경영의 중심이 있으며, 한편, 동·중부에서는 **2세 이상의 육우 사육(비육)**에 중심이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중간 지역에서는 세로·가로 어느 비율에서도 거의 평균적인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계속해서 여기에서도 각 지역의 농장군을 검토해 보자(제9표 다음 페이지 참조). 동·중부는 전체적으로 2세 이상의 육우가 다수 집중되어 있으며, 그러한 소의 사육(비육)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30에이커 이상, 특히 100에이커 이상의 대규모 농장에 해당하는 것이며, 농장 규모가 작아질수록, 특히 30에이커 미만 농장이 되면, 경영의 중심은 젖소와 1세 미만 육우의 사육으로 이동한다.

종합적으로, 세 지역 모두에서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농장 규모가 더 커질수록 **나이가 많은 육우의 사육(비육)**이 경영 내에서의 비중을 더 높게 하고, 농장 규모가 더 작아질수록 반대로 나이가 어린 육우와 젖소의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육우 생산에서는 송아지 생산으로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사육·비육 단계를 거쳐, 성우로서 최종적으로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최종 상품화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친 아일랜드 육우 생산에서는 이러한 생산의 각 단계가 농업 규모별 분업지역적 분업이 중첩된 형태로 전국적 규모의 사회적 분업과 지역 내 거래 네트워크에 의해 조직되어 있었다.

즉, 약간 간략화해서 말하자면,

  • 북서·남서부의 많은 수의 소규모·중소규모 농장에 의해 주로 담당되는 송아지 생산 및 송아지 사육,
  • 동·중부 지역의 100에이커 이상의 대규모 농장에 중심적으로 맡겨진 반쯤 비육된 소(스토어 소)의 사육·비육,
  • 주로 Dublin, Meath 등의 동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시장용 비육, 즉 비육된 소(fat cattle)의 사육,
  • 그리고 이 두 극단의 중간적 위치에 자리하는 중간부 지역의 분업 관계,
  • 이러한 사회적 분업을 바탕으로 한 북서·남서부에서 동·중부로 이어지는 대규모 육우 이동·유통 관계의 형성이다(제6도 참조).

이제까지는 아일랜드 육우 생산의 이른바 내부 구조에 분석의 초점을 맞춰왔다. 그렇다면,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의 육우 수출은 어느 정도였는가, 아일랜드산 육우는 어떤 경로를 통해 영국의 식육 시장에 공급되었는가, 아일랜드가 공급하는 식육은 영국 식육 시장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육우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아일랜드 농업은 영국 자본주의의 재생산 구조 안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었는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아일랜드 농업, 더 나아가 아일랜드 산업 구조 전체는 영국 자본주의의 재생산 구조에 어떤 형태로 편입되어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제6도를 참조하면서 이러한 점들을 검토해 나가고자 한다.

 

제6도: 아일랜드 육우 이동 경로

이 지도는 아일랜드 전역에서의 육우 이동 경로를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지역 (동·중부 지역)

  • 아일랜드 육우 생산 및 비육의 중심지로 묘사됩니다.
  • 북서부(C 지역) 및 남서부(C 지역)에서 **스토어 소(store cattle)**가 집중적으로 이동하며, 여기서 최종 비육(fattening)을 진행합니다.
  • Dublin 및 주변 동부 지역으로 시장용 육우가 공급되는 경로를 보입니다.

B 지역 (중간 지역)

  • A 지역과 C 지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으로 기능합니다.
  • 육우의 이동 경로 중간에서 완충 역할을 하며, A 지역으로의 육우 이동을 지원합니다.

C 지역 (북서부 및 남서부 지역)

  • 주로 송아지 생산 및 초기 사육을 담당하는 지역으로 묘사됩니다.
  • A 지역으로 스토어 소를 지속적으로 이동시키며, 농장의 소규모 형태가 두드러집니다.

제10표: 아일랜드의 영국으로의 육우 수출 두수


표 구성

  1. Fat Cattle (비육된 소)
    • 영국으로 수출된 최종 비육된 소의 두수를 나타냅니다.
  2. Store Cattle (스토어 소)
    • 부분적으로 비육된 소로, 추가 비육을 위해 수출된 두수입니다.
  3. Total Cattle (총 두수)
    • Fat Cattle와 Store Cattle의 합계 두수입니다.

연도별 세부 내용

  • 1917년:
    • Fat Cattle: 404,787두
    • Store Cattle: 447,531두
    • Total: 888,596두
  • 1918년:
    • Fat Cattle: 375,385두
    • Store Cattle: 319,669두
    • Total: 719,795두
  • 1919년:
    • Fat Cattle: 530,925두
    • Store Cattle: 224,710두
    • Total: 764,316두
  • 1920년:
    • Fat Cattle: 452,481두
    • Store Cattle: 446,155두
    • Total: 925,926두
  • 1921년:
    • Fat Cattle: 377,080두
    • Store Cattle: 318,192두
    • Total: 768,491두

평균 (1917~1921년):

  • Fat Cattle: 428,132두
  • Store Cattle: 351,251두
  • Total: 813,425두

특기사항

  • 비육된 소(Fat Cattle)가 수출된 소 중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 연도도 있었으나, 일부 연도에서는 스토어 소(Store Cattle)의 수출이 근접하거나 더 높았습니다.
  • 총 수출 두수는 연도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평균적으로 약 81만 두 수준입니다.

먼저, 아일랜드는 영국에 어느 정도의 육우를 수출하고 있었을까? 제10표는 1917년부터 1921년까지의 5년간의 수치를 보여준다. 평균적으로 매년 약 81만 두의 육우가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이는 대부분 **Fat Cattle(비육우)**과 **Store Cattle(부분적으로 비육된 육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스토어 소(Store Cattle)**의 수출이 많은 것이 주목할 만한 특징적 사실인데, 이 점은 이후에 논의하기로 하고, 이 81만 두라는 수출량이 아일랜드 육우 생산에서 어느 정도의 양적 비중을 차지하는지 살펴보자. 즉,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는 육우 중 어느 정도가 영국으로 수출되고, 또 어느 정도가 국내 소비를 위해 남겨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이미 검토했던 제4표, 특히 그 제4열을 다시 검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다만, 이번에는 수출 상황을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각 도별 통계가 아니라 아일랜드 전체의 통계 수치가 필요하다.

 

제11표는 아일랜드 전체(26개 도)에서, 1925년 6월 1일 시점1세 미만, 1세 이상 2세 미만, 2세 이상이었던 육우(제1열)가 1년 후, 즉 각각의 소가 1세 이상 2세 미만, 2세 이상 3세 미만, **3세 이상(제2열)**이 될 때까지 그 두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연령이 어린 소부터 순차적으로, **19%, 13%, 70%**로 두수가 감소하고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감소는 육우가 다른 곳으로 유출(이 경우에는 수출), 도축 또는 기타 원인에 의한 사망을 의미하는 것 이외에 다른 해석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전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영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반쯤 비육된 소(store cattle)**와 **비육된 소(fat cattle)**는 여기에서 말하는 **1세 이상의 소(주로 2세 이상의 소)**에 거의 해당한다. 따라서, 1세 이상의 소에서 약 81만 두가 감소한 수치와 1917년에서 1921년까지의 연평균 수출 두수인 81만 두를 비교해 보면, 이 감소 두수인 81만 두의 거의 대부분이 영국으로의 수출 두수였다고 단정해도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물론, 아일랜드 육우가 아일랜드에서 도축되고, 또한 아일랜드 내에서 소비되었다는 사실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육우의 대부분이 영국 식육 시장에 공급되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E.J. Riordan에 따르면, 1913년 아일랜드 농장에서 판매된 육우는 약 110만 두였으며, 그중 25만 두만이 아일랜드에서 도축되었고, 나머지 85만 두는 모두 생우 상태로 영국으로 수출되었다고 한다.

 

아일랜드 육우 생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국으로의 수출 산업으로 존재해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일랜드 육우는 어떤 경로를 통해 영국 식육 시장에 공급되었을까? **G. E. 퍼트넘(G. E. Putnam)**에 따르면, 그 경로는 다음과 같다(제7도 참조).


① 비육우(Fat Cattle)
비육된 소들은 선박으로 **글래스고(Glasgow)**와 버컨헤드(Birkenhead)(머지 강을 사이에 두고 리버풀과 마주 보고 있는 지역)로 운송된다. 이러한 선적 및 운송은 주로 영국의 **가축 중개업자(dealer)**에 의해, 때로는 아일랜드의 대규모 농장주에 의해 이루어진다.

글래스고와 버컨헤드에 도착한 육우는 즉시 **가축 판매 전시장(sales rings)**에서 경매에 부쳐지고, 식육 판매업자(dead-meat salesman)가축 중개업자(때로는 직접 소매업자인 정육점)에게 판매된다. 비육우를 구매한 업자들은 이를 도축하여 **도체육(carcass)**으로 만들어 도매 시장에 출하한다.

아일랜드 육우의 주요 구매자는 런던 상인들이다. 이들은 도체육을 버컨헤드에서 기차를 통해 런던의 **스미스필드(Smithfield)**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식육 도매 시장으로 운송한다. 때로는 아일랜드 육우를 생우 상태로 직접 **런던의 이슬링턴(Islington)**으로 선박으로 운송한 후, 그곳에서 도축하여 스미스필드로 출하하기도 했다.

글래스고와 버컨헤드에는 런던 상인 외에도 지방 상인들이 아일랜드 육우를 구매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들은 육우를 생우 상태로 지방으로 데려가 공영 도축장이나 개인 도축장에서 도축했다.


② 스토어 소(Store Cattle)
스토어 소 또한 비육우와 마찬가지로 글래스고나 버컨헤드로 운송된다. 이곳에 위치한 **스토어 판매 센터(Store-sale center)**의 경매장에서 **시장용 비육을 담당하는 농민(farmers)**이나 **목축업자(grazers)**에게 판매된다.

아일랜드 육우의 다수는 스토어 소로서 영국의 자본주의적 대농업 경영자들의 농장에 들어가 최종 비육 과정을 거친 후, 주로 스미스필드로 출하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영국 식육 시장에 공급되는 아일랜드 소고기는 과연 영국 식육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양적 비중을 차지했을까? 이 점을 검토하기 위해 우선 영국 식육 시장의 일반적 상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1920년 5월 31일부터 1921년 5월 31일까지의 1년 동안, 연합왕국 전체의 식육 소비량은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를 합하여 237만 톤이었다. 이 중 소고기는 전체의 **51.5%**에 해당하는 122만 톤을 차지했다(제12표 참조).

이미 제1도에서 보여졌듯이, 산업혁명을 거친 영국은 해외로부터의 식육 수입을 급격히 증가시켜왔다. 주요 수입국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호주, 뉴질랜드, 미국이었다. 특히, 냉동·냉장선의 등장으로 남미와 태평양 지역 등 먼 거리에서 대량의 식육을 운송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들 지역이 중요한 식육 공급지로 부상했다.

특히 아르헨티나로부터의 수입은 급격히 증가하여, **1921년에는 연합왕국 전체 소고기 소비량의 무려 31.7%**를 아르헨티나가 공급했다.

 

이 표는 연합왕국에서 1년 동안 소비된 주요 육류의 국내 생산량과 해외 수입량을 보여줍니다. 소고기(Beeef, Veal): 총 소비량 1,220천 톤 중 약 53.2%가 국내에서 생산되었고, 나머지 46.8%가 해외에서 수입되었습니다.양고기(Mutton, Lamb): 41.5%가 국내 생산이고, 58.5%가 수입되었습니다.돼지고기(Pig Meat): 해외 수입이 전체 소비량의 74.1%를 차지하며, 국내 생산은 25.9%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고기는 상대적으로 국내 생산 비중이 높은 반면, 양고기와 돼지고기는 해외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さて、1920年부터 1921년에 걸쳐 연합왕국에서 소비된 (실제로는 그 대부분이 그레이트브리튼에서 소비된) 쇠고기의 53.2%가 국내 생산으로 충당되었으나, 그중 아일랜드가 어느 정도의 쇠고기를 공급했을까? 이 점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통계 수치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점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있다.

1921년 6월 시점에서 연합왕국 전체의 육우 두수 중 아일랜드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50%였다(제13표 참조). 이미 확인된 바와 같이,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육우의 거의 대부분이 영국으로 수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일랜드의 육우가 곧 연합왕국 전체 육우의 50%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50%"라는 숫자는 사실을 과소평가한 것에 불과하다.

이는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수출되는 소의 대부분이 생우이고, 그중 많은 수가 최종 비육 과정을 거치지 않은 스토어 소(Store Cattle)라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그레이트브리튼의 육우로 통계 표에 나타나는 수치 중에는 그러한 아일랜드산 육우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J. Riordan의 말을 빌리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영국 농장에서 판매된 육우 중 5분의 3은 본래 아일랜드에서 온 것이었다"고 한다. 이 평가가 다소 과장된 것일 수는 있으나, 어쨌든 연합왕국(실제로는 영국)에서 소비된 쇠고기의 최소 26% 이상(전체 소비량의 53%를 공급하는 국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아일랜드가 공급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평가도 다음의 사실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여전히 중대한 결함을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일랜드 육우의 주요 구매자는 런던의 상인들이었으며, 아일랜드가 공급하는 쇠고기는 스미스필드(Smithfield)를 통해 런던의 대규모 식육 시장에 유통되었다. 그중 일부는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영국의 축산업자와 농민들에게 한 차례 넘어갔다가, 그곳에서 짧은 기간 동안 최종 비육을 거친 후 런던으로 출하되었다.

한편, 잉글랜드의 육우는 잉글랜드 전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으며, 생산된 육우는 각 지방에서 대부분 도축되어 소비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대규모 식육 시장인 런던에서는 알젠티나 등 해외에서 수입된 냉동·냉장 육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당연히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스코틀랜드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들어오는 냉동되지 않은 신선한 아일랜드 쇠고기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상당히 크며, 그것이 단지 26% 정도에 그치지 않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와 같은 점에서, 아일랜드로부터 영국으로의 쇠고기 수출은 바로 영국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런던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아일랜드 육우 생산이 세계 최대 규모의 런던 식육 시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영국 자본주의의 동향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니, 단지 아일랜드 육우 생산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산업 구조 전체가 일종의 식민지적 모노컬처(monoculture)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 깊이 영국 자본주의의 재생산 구조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 전체 산업 중에서 소, 특히 육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으로 크며(제14표 참조), 반면, 영국의 식민지적 지배 아래에서 아일랜드 공업의 발전은 억제되었다. 마편직물 공업, 맥주 양조업, 건축업, 위스키 제조업, 조선업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주목할 만한 공업이 없었다. 더욱이, 이러한 공업 부문들조차도 그 생산액은 소와 관련된 전체 생산액은 물론, 육우의 생산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일랜드가 영국에 수출하는 육우의 대부분이 영국 자본주의 대농장에서 최종 비육되는 스토어 소(Store Cattle)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합니다. 아일랜드 동부의 Dublin, Meath 등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농장을 정점으로, 북서부와 남서부의 다수의 소규모 영세 농가를 기반으로 하는 아일랜드의 전체 농업 구조는 스토어 소를 매개로 하여 영국 자본주의 대농업과 깊게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국 자본주의 대농업은 그 기반에 여전히 가난하고 영세하며 권리를 가지지 못한 식민지 아일랜드의 전 농민층을 단단히 포섭하는 형태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Irish Cattle Farming and English Capitalism - CORE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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