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다져진 쇠고기의 역사
L’histoire hachée menue de la viande de boeuf par Nathalie Helal
다음은 Histoire Magazine 제11호에 실린 「잘게 다져진 쇠고기의 역사(L’histoire hachée menue de la viande de bœuf)」의 한국어 번역한 내용이다.
쇠고기의 잘게 다져진 역사 – Histoire Magazine 제11호
"쇠고기는 프랑스 식문화 역사상 가장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음식 중 하나다."
– Nathalie Helal
사회적 위계를 드러내는 고기, 쇠고기
쇠고기는 오랫동안 프랑스 식문화에서 독특한 사회적 지표로 작용해 왔다.
고급 부위와 값싼 부위,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계층의 차이는 수세기에 걸쳐 계급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이 글은 그러한 쇠고기 소비의 역사를 따라가며, 도시, 계층, 조리법의 변화를 추적한다.
고급 부위와 하급 부위의 경계
기독교 서구 세계에서 수 세기 동안 쇠고기는 주로 부유층과 도시민의 식탁에만 올라갔다.
특히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말까지,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쇠고기 소비는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는 단순히 인구 증가 때문만은 아니었다.
파리는 런던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고기를 좋아하는 상인과 장인 계층으로 구성된 중간계급 엘리트가 집중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쇠고기의 각 부위 분배는 당시 사회의 계층적 격차를 그대로 드러낸다.
가장 신선하고 연한 부위는 지불 능력이 있는 부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1746년 요리책 『부르주아 요리사』
그 대표적인 사례가 1746년에 출간되어 여러 차례 재판된 요리책 **『부르주아 요리사(La Cuisinière bourgeoise)』**에 잘 나타난다.
저자 **메농(Menon)**은, 고기 부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하급 육류(하급 정육점 고기)**는 아예 다루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계급적 멸시가 드러나는 구절을 남긴다:
“나는 이른바 **하급 정육점 고기(basse boucherie)**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이 고기는 오로지 하층민만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고기의 밍밍한 맛을 가리기 위해 소금, 후추, 식초, 마늘, 샬롯을 다량 사용한다.”
반면, **중산층과 '제대로 된 식탁을 차리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부위를 사용한다고 적는다:
- 내장 부위: 뇌, 혀, 입천장, 신장, 지방, 꼬리
- 허벅지 부위: culotte, tranche, pièce ronde, gîte à la noix, cimier, moelle
- 기타 부위: aloyau, charbonnées, flanchets, entrecôtes, poitrine, tendrons, palerons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런 '잘 먹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책에도 쇠고기 요리는 단 36가지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쇠고기가 당시에도 매일 식탁에 오르는 재료는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하층민의 고기: 곱창과 ‘국거리’
서민층, 즉 돈도 공간도 조리 도구도 부족한 이들에게는
곱창 등 내장과, ‘국거리 고기’(le bouilli) 정도만이 허용되었다.
그런데, 미식가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은
이 ‘국거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고기에서 국물만 빠진 것(de la chair moins son jus)"
→ 다시 말해, 맛은 빠지고 기운만 남은 고기라는 의미다.
1766년, 외국인의 시선
1766년, 프랑스를 여행한 영국 작가 **토비아스 스몰렛(Tobias Smollett)**는 이렇게 적었다:
“프랑스의 쇠고기는 기름지지도, 밀도도 없지만,
국물용으로는 매우 좋다.
프랑스인들은 쇠고기를 오직 그 용도로만 쓴다.
이 이미지는 1750년경 **가브리엘 드 생토뱅(Gabriel de Saint-Aubin)**이 제작한 판화로, 제목은 **「Marché du bœuf gras」(살찐 소 시장)**이다.
이는 프랑스 전통의 **사순절(Lent) 전 축제인 ‘쇠고기 시장’**을 묘사한 것으로, 고기 소비, 도시 축제, 계급 풍자 등이 어우러진 역사적 장면이다.
Marché du bœuf gras: 프랑스식 ‘살찐 소 축제’
역사적 맥락
- **‘bœuf gras’**는 문자 그대로 ‘살찐 소’를 의미하며, 사순절 전 마지막 고기 축제 기간에 열렸다.
- 고기 소비가 금지되기 전, 마지막으로 풍성한 고기 잔치를 즐기기 위해 살찐 소를 전시하고, 이를 퍼레이드로 돌리는 축제 행렬이 열렸다.
- 특히 파리, 리옹, 루앙 등 도시에서는 **도축조합(la corporation des bouchers)**이 주도하여 ‘고기와 육식의 힘’을 상징적으로 과시했다.
이미지 해설 (Gravure de Saint-Aubin, 1750)
이 판화는 18세기 중엽 파리에서 열린 bœuf gras 축제 행렬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 가면을 쓴 인물들, 기이하게 부풀린 드레스, 말을 탄 병사들, 거대한 살찐 소와 함께한 퍼레이드는 희극성과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 귀족·병사·평민·광대가 함께 섞여 있는 장면은 계급 간 경계를 희화화하거나 풍자하는 효과를 노린다.
- 축제의 중심에 있는 소는 단순한 고기 그 이상, 도시민의 생계, 권력, 풍요, 탐식의 상징이다.
문화적 의미
- 쇠고기는 당시 사회에서 ‘힘과 지위’를 상징했으며, 특히 ‘살찐 소’는 풍요와 사치, 그리고 육식에 대한 예찬을 상징했다.
- 이 이미지처럼, 고기 소비를 중심으로 도시 축제와 사회 풍자가 결합된 사례는 유럽 도시 문화에서 흔히 발견된다.
-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앞둔 시기, 이러한 이미지들은 때로 계급 구조에 대한 비판과 식량 불평등의 은유로 읽히기도 했다.
고기와 가난, 부용과 버거
퇴역한 암소나 수소, 수년간 짐을 끌며 지친 이 가축들의 고기는 매우 질기고, 그나마 국거리로 적합했다.
다만, 내장, 가죽, 지방은 예외였는데, 가죽과 지방은 식용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부이(bouilli)에서 부용(Bouillons)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이(bouilli)’, 즉 삶은 쇠고기는 이후 세기에도 높은 인기를 유지한 요리였다.
에밀 졸라(Émile Zola)가 1877년에 발표한 소설 『라슴무아르(L’Assommoir)』에서,
주인공 제르베즈(Gervaise)의 축제 식사에는 거위 구이와 함께,
수프 다음 순서로 **‘작은 부이 한 조각’**이 등장한다.
산업화 시대, 고기를 향한 열망
제2제정기(Second Empire)는 산업화와 함께 프랑스 노동자 계층이 급격히 늘어나던 시기였다.
이때 쇠고기는 특히 더 높이 평가되었다.
프랑스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인식 아래,
일부 의사들은 붉은 고기를 충분히 먹는 것만이 국가의 ‘퇴화’를 막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우려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말고기 소비(히포파지)**였다.
프랑스에서는 1866년 합법화되었으며,
위생학자들은 노동자 계층의 단백질 보충 수단으로 이를 권장했다.
고기를 꿈꾸는 노동자들
도시에서의 고기 소비는 여전히 불평등했다.
1857년 파리 바티뇰(Batignolles) 지구의 한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의 3분의 1은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수십 년이 흐른 **벨 에포크(Belle Époque, 미의 시대)**에 이르면,
노동자 여성에게 제공되는 브리 치즈 한 조각이
‘여공의 커틀릿(côtelette de l’ouvrière)’이라 불릴 정도였다.
부용(Bouillons)의 등장
도시 서민의 구원은 바로 ‘부용(Bouillons)’이라 불리는 대중 식당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메뉴는 한정적이지만 매우 실용적인 구조를 갖췄다.
- 하급 부위의 고기와
- 채소들을 대형 솥에서 함께 푹 삶은 한 그릇 식사는
당대 가장 저렴한 완전식사로 자리 잡았다.
1854년, 정육점 주인 **피에르 루이 뒤발(Pierre-Louis Duval)**은
자신의 가게에서 팔리지 않던 **하급 고기(basse viande)**를 처리하기 위해
첫 부용 식당을 열었다.
처음에는 **쇠고기 국물(bouillon de bœuf)**만을 제공했기 때문에
식당 이름도 자연스레 **‘부용(Bouillon)’**이 되었다.
대중 외식문화의 확산
이 개념은 금세 퍼져나갔다.
예컨대 몽파르나스(Montparnasse) 지역에 생긴 **‘캘리포니아(la Californie)’**라는 식당은
매일 약 1만 인분의 고기와 채소 요리를 판매했다.
세기 말까지, 파리에는 200곳이 넘는 부용 식당이 성업 중이었다.
1896년에는 프레데릭과 카미유 샤르티에(Frédéric et Camille Chartier) 형제가
오늘날까지 운영되는 **‘부용 샤르티에(Bouillon Chartier)’**를 열었다.
하지만 선구자인 뒤발 가문은 몰락하지 않았다.
그의 아들은 **‘고드프루아 드 부용(Godefroy de Bouillon)’**이라는 별명으로
당시 파리 사교계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프랑스의 부용 vs 미국의 햄버거
한편 프랑스에서 부용 식당이 확산되던 바로 그 시기,
미국에서는 전 세계적 아이콘이 될 음식이 탄생하고 있었다.
바로 **햄버거(hamburger)**다.
- 이 역시 쇠고기를 다져 구운 요리
- 두 조각의 빵 사이에 끼워 넣은 서민적 음식
- 이는 이후 전 세계로 퍼지며 대중 외식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Véritable extrait de viande" (진짜 고기 추출물)이라는 문구가 적힌 1884년의 크로몰리토그라피(chromolithographie) 광고 포스터는 19세기 후반 고기 소비의 산업화와 과학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유산이다.
무엇을 광고했나?
이 광고는 ‘리비히 고기 추출물(Extrait de viande de Liebig)’ 같은 제품을 홍보한 것으로 보인다.
- Justus von Liebig (유스투스 폰 리비히): 독일의 화학자, 현대 생화학의 선구자.
- 그는 쇠고기에서 농축된 단백질과 풍미를 추출하여, 가루 또는 액상 형태로 만든 ‘고기 추출물’을 고안했다.
- 이 제품은 즉석 수프, 육수 큐브, 병약자용 보양식 등으로 사용되며, 19세기 후반 도시 대중 식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크로몰리토그라피란?
- Chromolithographie는 19세기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다색 석판 인쇄 기법이다.
- 당시 식품 회사들은 이 기법을 활용해 선명하고 다채로운 광고 엽서, 포스터, 상표지를 제작했다.
- 리비히 고기 추출물 회사는 특히 고품질 광고 엽서 시리즈로 유명하며,
오늘날에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치를 지닌다.
사회적 의미
- 고기 = 과학 + 건강 + 산업화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 식품이 단지 먹는 것이 아닌, 과학적이고 문명화된 소비 대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이런 광고는 **대중에게 ‘신뢰감’과 ‘문명화된 맛’**을 전달했다.
- "진짜 고기 추출물"이라는 표현은, 당시 시장에 가짜 제품도 유통되었음을 암시하며, 품질 보증의 메시지도 함께 전달한다.
**리비히 고기 추출물(Extrait de viande de Liebig)**은 19세기 중반에 등장한 세계 최초의 상업용 육류 농축 식품 중 하나로, 현대의 육수 큐브, 인스턴트 국물, 병약자용 보양식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식품과 과학, 제국주의와 대중 소비의 결합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제품이다.
기원: 과학에서 태어난 고기
-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독일의 저명한 화학자이자 생리학자로, 19세기 유럽에서 현대 영양학과 비료 화학의 아버지로 불렸다.
- 그는 쇠고기에서 단백질과 맛 성분을 추출해 소화가 쉬운 형태로 농축하는 기술을 고안했다.
- 이 고기 추출물은 병자, 병원, 군대, 탐험가들을 위한 영양 공급원으로 각광받았다.
국제적 생산과 유통
- 리비히 고기 추출물은 1865년, **벨기에 사업가 조르주 크리스토프(J.C. Giebert)**와 함께 설립한
**Liebig's Extract of Meat Company (Lemco)**를 통해 대량 생산되었다. - 공장은 **우루과이(프레이 벤토스)**에 세워졌는데,
이는 저렴한 소를 수입해 대량 도축 및 추출 생산을 하기 위한 전략적 입지였다. - 이로써 남미 소고기를 유럽 식탁으로 옮긴 세계 최초의 글로벌 식품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다.
어떤 제품이었나?
- 짙은 갈색의 페이스트(고형 추출물) 또는 농축 육수 액상 형태로 판매되었다.
- 물에 소량만 타도 진한 쇠고기 국물이 완성되며,
요리, 보양식, 군대 배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 오늘날의 매기(Maggi) 육수 큐브나 오뚜기 쇠고기 다시다의 초기 모델에 해당한다.
광고의 힘: 리비히 엽서(Liebig Cards)
- Lemco 사는 1870년대부터 대중 마케팅을 위해 크로몰리토그라피 방식의 컬러 엽서 시리즈를 제작했다.
- 이 Liebig 광고 엽서는 수천 종이 존재하며,
세계사, 동물학, 식민지, 기술, 요리법, 고대 문명 등을 소재로 한 교육용 이미지로 구성되었다. - 유럽 가정의 어린이 교육 도구이자 브랜드 홍보 수단으로 기능했고,
오늘날엔 수집가들이 모으는 역사 유물이 되었다.
문화적·역사적 의의
- ‘고기’가 과학으로 정제된 최초의 사례이자,
건강과 산업화된 식품이 결합한 브랜드이다. - 19세기 유럽의 식민주의, 육류 자본주의, 영양 혁명을 상징한다.
- 전통적인 “신선한 고기” 개념을 넘어, 저장 가능하고 상업 유통 가능한 고기 형태를 대중에게 소개했다.
"Boîte de corned-beef destinée aux soldats" —
이는 말 그대로 군인을 위한 콘비프 통조림을 뜻하며,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쟁 시기까지 병사들의 주요 군용 식량이었던 보존된 쇠고기 캔 제품을 지칭한다.
콘비프 통조림: 전쟁식량의 혁신
무엇인가?
- **콘비프(corned beef)**는 소금에 절인 쇠고기를 익혀서 보존한 가공식품이다.
- ‘corned’는 고대 영어로 굵은 소금 입자를 뜻하는 **“corn”**에서 유래되었다.
- 고기를 가열·멸균 후 밀폐 용기에 담아 장기간 저장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어떻게 만들어졌나?
- 니콜라 아페르의 보존 기술(1809) → 1853년 윈슬로(Winslow)의 멸균 개선
- 섭씨 115도에서 완전 멸균 처리된 고기를 철제 캔에 담아 수년간 보관 가능
- 이 과정이 시카고 도축장 산업과 결합되면서 대량생산 시스템이 확립됨
왜 병사들에게 중요했는가?
1. 남북전쟁 (1861–1865)
- 미국 병사들이 야전에서 쉽게 열고 먹을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활용
2. 프랑스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
- **참호 속 병사들(Les Poilus)**에게 필수품
- 고온, 불규칙한 보급, 위생 문제 속에서도 안전하게 섭취 가능
3. 제2차 세계대전
- 미군, 영국군, 러시아군 등 대부분의 전선에서 표준 보급품으로 지급
- “SPAM”과 함께 전쟁 식량의 상징
역사적 이미지
이러한 통조림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음:
- 금속 캔에 프레스된 붉은 고기 덩어리
- 당시 패키지에는 종종 “For Army Use”, “War Ration”, “Corned Beef – Packed for Soldiers” 등의 문구가 인쇄됨
-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군용 마크와 함께 배급
문화적 의미
- 전쟁 식량의 상징이자, 현대 가공식품의 기원
- 이후에는 민간 소비자용으로도 전환되어
오늘날까지도 비상식량, 캠핑용, 도시락용으로 활용
보존식품과 육류 저장 기술의 진화
신선한 고기는 부패가 빠르기 때문에, 고기의 보존 방식은 수세기 동안 고기 소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18세기 전반기까지, 일반적으로 쇠고기는 ‘브레지(brési)’ 상태로 소비되었다.
‘브레지’란 숯불 색을 띤다는 뜻으로, 이는 고기가 건조되었거나 훈연된 상태임을 의미한다.
고기를 훈제하거나 소금에 절이는 방식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19세기에 들어 몇 가지 결정적인 기술 혁신이 일어난다.
니콜라 아페르와 통조림의 탄생
-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 1749~1841)**는 프랑스의 발명가로,
음식을 유리병에 밀봉해 가열하는 방식으로 식품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 그의 연구는 채소의 보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그가 고안한 ‘보존용기(conserve)’ 기술은 미국에서 특히 큰 관심을 받았다.
미국 시카고, 그리고 콘비프의 산업화
- 도축장이 밀집한 시카고에서는 이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게 된다.
- 1853년, 미국인 **윈슬로(Winslow)**는
섭씨 115도에서 완전한 멸균(살균)에 성공하며
통조림 쇠고기(corned-beef) 생산의 길을 열었다.
전쟁과 콘비프의 결합
- 이 콘비프 통조림은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당시
군인들에게 매우 귀중한 전투 식량이 되었다. -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참호 속의 프랑스 병사들(les poilus)**에게도
가장 흔하고 중요한 전시 식량으로 활용된다.
- 고기는 원래 훈제·건조·소금 절임 상태로 저장됨.
- 19세기 초, 아페르의 보존 기술이 개발됨.
- 1850년대, 미국에서 이 기술이 쇠고기 통조림에 적용되며 산업화됨.
- 콘비프는 전쟁 식량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됨.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1873)**는 독일의 화학자이자 생리학자, 그리고 현대 영양학과 농업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연구는 19세기 식품 과학, 비료, 육류 보존 기술, 영양학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고기 추출물의 상업화(Extrait de viande)**로 잘 알려져 있다.
주요 업적 요약
🔬 농업화학 | 식물은 물, 이산화탄소, 무기염(광물질)로 자란다는 이론을 정립. → 현대 비료 과학의 기초 마련 |
🍖 식품 과학 | 고기에서 단백질과 영양을 추출한 고기 추출물 개발. 이후 Liebig’s Extract of Meat Company (LEMCO) 설립 |
🍼 유아식 개발 | 최초의 상업용 유아분유 개발에 간접 기여 (Liebig's Soluble Food for Babies, 1860년대) |
📚 교육 개혁자 | 독일 및 유럽의 실험 중심 화학 교육 개혁 주도 (마르부르크·기센·뮌헨 등지에서 강의) |
리비히 고기 추출물 (Extrait de viande)
- 리비히는 고기 자체를 보존하기보다, 고기의 영양 성분만 농축해 식품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 그는 영국 및 벨기에 자본가들과 함께 **우루과이(프레이 벤토스)**에 대규모 공장을 세워
LEMCO (Liebig’s Extract of Meat Company) 설립 (1865년) - 이 고기 추출물은 전 세계로 수출되며, 전쟁 식량, 병원 영양식, 유럽 상류층 보양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대표 저서
- Organic Chemistry in its Applications to Agriculture and Physiology (1840)
→ 화학이 농업과 생리에 어떻게 응용되는지를 설명한 고전 - Familiar Letters on Chemistry
→ 대중에게 화학의 원리를 쉽게 설명한 편지 형식의 책
문화적·역사적 영향
- **“화학을 삶과 연결한 과학자”**로 평가됨
- **과학적 식사 개념(영양소 중심 식사)**을 일반인에게 소개
- 식품의 산업화와 전 지구적 유통 시스템의 시작점
- 오늘날의 다시다, 육수 큐브, 보충용 단백질 분말, 분유, 보양식 등은 그의 유산 위에서 발전한 것들임
아르헨티나: 쇠고기의 엘도라도, 그리고 보존식의 진화
아르헨티나는 한때 **전 세계 소 떼의 낙원(Eldorado)**으로 불렸다.
이곳에서 수많은 소들이 **기름(수지, suif)**과 **가죽(cuir)**만을 위해 도축되었고,
고기 자체는 거의 소비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1873)**는
한 가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는 특정 압력 조건 아래에서 쇠고기를 오랫동안 끓여,
그 안에서 **농축된 고기즙(sucs concentrés)**을 추출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를 통해 **‘고기 국물 큐브(bouillon-cube)’**의 시초가 탄생한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 de 1855)**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식품회사(Compagnie alimentaire de Buenos Aires)**가
**‘고기 타블렛과 비스킷(tablettes et biscuits de viande)’**을 전시했으나,
그 제조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냉장선과 유럽으로의 고기 수출
그로부터 약 30년 후,
**냉장선(bateaux frigorifiques)**이 등장하면서
아르헨티나산 쇠고기를 유럽으로 대량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냉장 육류 수입은
유럽의 인구 증가, 그리고 생활 수준 향상에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실제로 냉장고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시점은 1930년대에 들어서야 가능했다.
그조차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에 한정되었다.
- 아르헨티나는 고기보다 지방과 가죽 채취용 도축 산업의 중심지였다.
- 리비히는 이 ‘버려지는 고기’에서 농축 육수 성분을 추출하는 과학적 방법을 개발했다.
- 1855년 만국박람회에 초기 육류 추출 가공품이 등장했지만, 구체적 기술은 비공개였다.
- 냉장 기술의 발전으로 육류의 국제적 유통 시대가 열렸고,
이는 근대 유럽의 식생활 변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Bateaux frigorifiques는 프랑스어로 “냉장선”, 즉 냉동·냉장 설비가 갖춰진 선박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19세기 말부터 육류 산업, 식품 무역, 냉장 유통의 혁명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술 개념이다.
정의
Bateau frigorifique = 냉장 선박 (Refrigerated ship)
- 가축 도축 후 고기(특히 쇠고기)를 신선하게 보존한 채로
장거리 운송할 수 있도록 설계된 선박. - 내부에 압축 냉각기, 암모니아 기반 냉동 장치를 갖추었으며,
육류, 어류, 낙농품, 과일 등 부패하기 쉬운 식품을 국제적으로 유통할 수 있게 함.
역사 요약
1876년 | 세계 최초의 냉장선, SS Paraguay 호가 아르헨티나에서 프랑스로 냉장 쇠고기 운송 성공 |
1882년 | 뉴질랜드에서 영국으로의 냉장 양고기 수출 성공 (Dunedin호) → 냉장선 시대 본격 개막 |
1890년대 |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 유럽/미국으로 대량 수출 체계 확립 |
1930년대 | 냉장 컨테이너와 육상 냉장창고의 발전 → 냉장 유통망 완성 |
글로벌 식품 유통의 변화
냉장선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변화를 일으킴:
- 고기 생산국과 소비국의 분리
-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뉴질랜드 = 도축·공급국
- 영국, 프랑스, 독일 = 소비시장
- 산업 도축 + 냉장 운송 = 국제 식품 체인 출현
- 도시 중산층도 저렴한 고기 소비 가능 → 식문화 대중화
다진 스테이크, 쇠고기의 이미지 전환
전후(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이 시작되자마자, 프랑스에서는 ‘감자와 스테이크’에 대한 소비 열풍이 일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자, 이러한 분위기는 쇠고기 소비 촉진을 위한 대규모 공공 캠페인으로 전환된다.
- 정부 주도로 진행된 이 캠페인의 총예산은 500만 프랑이었다.
- 슬로건은 **“소를 따르자 (Suivez le bœuf)”**였다.
이는 당시 소비자 구매력 하락과 쇠고기 소매가 상승으로 인해
붉은 고기 소비가 3% 급감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소비자 운동과 건강 우려
같은 시기, 소비자 단체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UFCS(여성시민사회연합)**는
1973년에 ‘일일 성스러운 스테이크’나 ‘맛없는 에스칼로프’를 식탁에서 없애자고 선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들 역시 쇠고기 과다 섭취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한다.
가장 강력한 근거는 심혈관 질환과 암의 위험 증가였다.
쇠고기 = 남성성? → 이미지 붕괴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오랜 고정관념,
즉 붉은 고기는 남성성과 힘의 상징이라는 이미지를 무너뜨렸다.
특히 이 이미지는 ‘르 트랑트 글로리외(Trente Glorieuses, 30년 경제성장기)’ 시절에 강하게 자리 잡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 **신체적 노동자(블루칼라)**가 줄고,
- **사무직(화이트칼라)**이 늘어나면서,
- 사람들은 더 적은 칼로리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 “bifteck을 벌다(gagner son bifteck)”라는 표현도 점차 힘을 잃는다.
광우병과 ‘신뢰’ 회복의 시작
1996년, 광우병(BSE) 사태가 터지면서
결과적으로는 쇠고기의 ‘식별 정보’와 ‘신뢰도’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이 생긴다.
- 이 시기 **“한 마리 소의 신원 확인”**이라는 주제로 대대적인 정보 캠페인이 전개되었고,
- 그 결과 **VBF(Viande Bovine Française, 프랑스산 쇠고기)**라는 인증 제도가 탄생했다.
이처럼 위기가 새로운 표준을 만들게 된 것이다.
쇠고기의 귀환 — "Quel punch, le bœuf!"
하지만 사람들의 쇠고기 신뢰를 되찾기까지는 10여 년이 더 필요했다.
- 철저한 이력 추적 시스템을 갖춘 사육장,
- 이상적인 사료 관리,
- 스타 정육점장들의 등장 덕분에
1984년의 오래된 광고 문구였던
**“소고기의 펀치력! (Quel punch, le bœuf!)”**이라는 말도
드디어 당당히 다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Mademoiselle Louise Stock, reine des halles en 1899
— 1899년, ‘할르(Halles)’의 여왕으로 선발된 **루이즈 스톡 양(Mlle Louise Stock)**은 프랑스 파리의 식품 시장 문화와 도시 상업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이 이미지는 **화가 파리(Parys)**의 **수채화(aquarelle)**로 제작되어, 당시 주간 신문인 **《일요 태양(Le Soleil du dimanche)》**에 실렸다.
Contexte historique: "Reine des Halles"란?
- **Les Halles(레잘르)**는 파리 중심부의 전통적 도매 식품시장이자 “파리의 배”로 불렸다.
- 매년 이곳에서는 **‘레잘르의 여왕’(Reine des Halles)**을 선발하는 행사가 열렸다.
- 육류, 생선, 채소 상인들의 대표 얼굴로 뽑힌 이 여왕은 시장 공동체의 자긍심이자,
노동 여성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
Louise Stock의 상징성
- 루이즈 스톡은 1899년 여왕으로 뽑힌 파리 여성 노동자였다.
- 당시에는 **도매 정육상(bouchère en gros)**이나 가판대 상인, 생선 소매인 등이 많았고,
이들 중 노동력과 품격, 미모를 겸비한 여성이 상징적으로 선출되었다. - 그녀의 등장은 ‘노동하는 여성의 위엄’,
그리고 도시 식문화의 아름다움과 활력을 대표하는 존재로 널리 알려졌다.
수채화의 역할
- Parys라는 화가는 당대 인물화와 생활사를 그리던 수채화 작가였고,
이 작품은 단순한 인물 초상을 넘어 파리 대중문화, 시장 공동체, 여성 노동의 시각화 역할을 했다. - **《Le Soleil du dimanche》**는 교양·삽화 중심의 대중 일요지였고,
이 이미지는 루이즈 스톡을 파리 시민 모두에게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문화적 의미
- ‘레잘르의 여왕’은 단순한 미인대회가 아니라,
노동·식품 유통·도시 상징성이 결합된 프랑스적 전통이었다. - 루이즈 스톡의 수채화는 19세기 말 파리의 식육 유통·도시 경제·여성 상인의 사회적 위상을 상징한다.
이 문구는 1913년 9월 21일자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일러스트판에 실린 풍자적인 기사와 삽화에 대한 설명입니다.
“대통령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 리모주의 푸줏간 거리”
“공화국 대통령에게 보여주는 것을 깜빡한 풍경: 리모주(Limoges)의 '부슈리 거리(Rue de la Boucherie)'.”
“이 거리의 풍경을 보았더라면, 포앵카레 대통령께서는 그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고 생생한 장면 중 하나를 기억으로 남기셨을 것이다.”
이는 1913년 프랑스 대통령 **레이몽 포앵카레(Raymond Poincaré)**가
리모주를 방문했을 당시를 배경으로 한 풍자적 논평과 삽화입니다.
해설
- Rue de la Boucherie는 프랑스 리모주(Limoges) 시내에 실재하는 거리로,
전통 정육점과 푸줏간 상인들의 본거지로 알려진 지역입니다. - 19세기 말~20세기 초까지 도축업과 육류 판매가 집중된 유서 깊은 상업 거리였으며,
고기, 피, 가축, 작업 도구, 외부 조리대가 늘어선 거칠고 생생한 풍경이 특징이었습니다. - 해당 삽화는 대통령이 이런 **'진짜 노동의 현장, 지방 상인의 일상'**은 보지 못했다며,
도시 이미지의 미화와 권력자의 편향된 시선을 꼬집는 유머를 담고 있습니다.
문화적 의미
- Le Petit Journal Illustré는 대중 주간지로, 풍자와 이미지로 시사 문제를 묘사하곤 했습니다.
- 이 삽화는 당시 프랑스가 겪고 있던 도시 vs 농촌, 위생 vs 현실, 권위 vs 민중의 긴장 구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사례입니다.
- 푸줏간 거리는 단지 고기 판매장이 아니라,
프랑스 육류 유통과 지방 도축 산업의 역사적 상징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탈리 엘랄(Nathalie Helal)**은 언론인이자 프랑스 미식과 식문화의 역사 전문가이다.
그녀는 프랑스 요리와 지역 식재료, 미식 전통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음식이 사회·문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조명하는 글쓰기로 평가받는다.
최근 저서
- 『Le goût de Paris et de la région Île-de-France』
(파리와 일드프랑스 지역의 맛)- Hachette Cuisine 출판,
- **산드린 오드공(Sandrine Audegond)**과 공동 집필
- 파리와 그 주변 지역의 전통 요리, 식문화, 음식 관련 장소들을 소개한 책으로,
지역 정체성과 미식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활동 분야
- 프랑스 미식사
(예: 육류 소비, 식탁 문화, 레스토랑의 기원 등) - 식재료의 사회사
(감자, 빵, 소금, 고기 등 식량의 계급적 의미 분석) - 도시와 음식
(파리 중심부의 시장, 할르, 정육점 문화 등)
L'histoire hachée menue de la viande de boeuf par Nathalie Helal - Histoir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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